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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2시가 되면 오포가 울렸던 부여 석성면의 근대 문화를 찾아서

부여군 석성면에서 돌아본 근대 문화의 흔적과 유산들

2021.08.07(토) 21:03:30 | 충화댁 (이메일주소:och0290@hanmail.net
               	och0290@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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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석성면은 조선시대에는 현감이 다스리는 석성현(縣)이었던 곳이다. 현에는 객사와 동헌, 문루를 지어서 현의 행정을 총괄하는 곳이다. 현재는 객사와 문루는 사라지고 동헌 건물만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나 향교, 현의 입구에는 하마비라는 비석을 세워놓았다. 여기서부터는 가마나 말에서 내려서 걸어서 오라 일종의 알림판이다.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봉안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지내는 곳이니 예를 갖추라는 의미이다.

석성 양촌 마을에도 조선시대 하마비가 남아 있다. 오른쪽에 가장 큰 비석에 '대소인원개하마'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라는 뜻으로 예를 갖추고 마을에 들어오라는 뜻이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임금이 없는 세상이 되었고 길도 새로 나서 밭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어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한숨을 쉬고 지나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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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석성의 석성리 양촌 마을에서 재미있는 근대 문화의 흔적을 발견했다.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 석성 동헌이 있는 곳을 향해 걷다 보면 옆에 작고 다 쓰러져가는 집이 한채 있다.
동네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겠고 외지인들은 너무 하찮고 가치가 없어 보여서 그냥 지나칠 이 집이 양촌 마을의 공동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풀숲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함석문 앞에는 우물도 있다.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마을 사람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의 가치는 매길 수 없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추억과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있던 흔적의 유산으로 간직했으면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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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새마을 목욕탕'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덕에 오히려 이런 흔적이 남아있게 된 것 같다. 오래된 마을에서 이런 흔적을 찾아서 걷는 재미가 있다.  너무 빠르게 살다 보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는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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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면에서 두 번째로 우체국을 지었던 곳이다.
석성우체국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미련이 남은 것 같은 이런 흔적들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우리나라 초기 통신 발달을 이끌었던 우체국은 전보, 전화 교환, 우편 등의 통신 1세대의 역할을 주도했던 산업이었다. 석성면의 행정중심이 신도로가 난 십자가 거리로 옮겨가면서 이 우체국도 건물만 남고 이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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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여 석성면의 최초의 우체국이었던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의 우체국의 모델하우스라고 해도 할만하다. 규암면에도 똑같은 건축양식으로 우체국을 지었다. 현재도 개인이 살면서 관리를 잘하고 있어 외관만으로도' 볼거리가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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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석성주조장'이라는 간판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녹이 슬어버린 철대문이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동네 아이들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노란 알루미늄 주전자를 들고 와서 막걸리를 받아 가던 곳이다.

주전자에 넘치게 막걸리를 부어준 주조장 주인의 인심은 아이가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게 만들었다. 막걸리 한 모금에 붉어진 얼굴로 건들건들 걸어서 집에 갔다는 추억을 풀어놓을 중년들이 반길 곳이다. 그렇게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가 배운 술을 평생 즐기게 됐다는, 막걸리를 너무 표시가 나게 먹어버려서 집에 가는 도중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섞어서 집에 가져갔다는 등의 질펀한 추억 잔치가 벌어져도 좋겠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을 붉은 벽돌은 서천 장항 제련소에서 제련을 한 슬러지를 재가공해 만든 벽돌을 사다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철을 재가공한것이라 백 년 세월쯤은 끄덕도 하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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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성주조장 입구. 술은 더이상 빚지 않지만 술을 빚던 사람은 여전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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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에서 살던 시절이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보니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어린 시절 이런 집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반갑고 정겨운 곳이다. 전염병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비대면, 소규모 관광이 권장된다. 이런 골목 투어에 알맞은 근대의 흔적들을 상품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만한 곳이다.

12시가되면오포가울렸던부여석성면의근대문화를찾아서 10▲ 석성주조장에는 옛우물도 남아 있다.

보기만 해도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 것 같다. 빠르고 가파르게 지나온 시간들을 붙잡고 싶을 때 이런 우물가에 앉아서 두레박으로 오랜 시간을 퍼올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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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성 지서 건물이었다가 보건진료소였다가 지금은 빈 건물인 건물.

건물 앞의 철탑은 위쪽에는 오포를 울리던 확성기가 달려있다. 낮 12시를 알리는 추억의 오포 소리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계가 귀했던 시절 정오를 알려준다고 해서 오포라고 불렸다. 지금도 정오를 알려주고 있는지 아직 현지인에게 알아보진 않았다. 정오를 기준으로 하루를 가르는 오포소리는 당시의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눈 돌리는 곳마다 시계가 있는 시절이 되었어도 추억이 필요한 시간을 위해 정오를 알려주는 오포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비슷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공유하는 추억도 비슷하다. 
세월이 흘러서 함께 지나온 세월이 머물러 있는 곳을 만나는 일만큼 뭉클한 일이 있을까?
우리는 너무 빠른 세월을 살았다. 돌아보고 추억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 때문에 감성과 스토리를 놓친 시간이 머물러 있는 장소에 열광하게 되는 것 같다. 부여의 석성에는 객사의 연못과 동헌, 역사의 기록이 남겨진 비석들, 감성과 스토리가 있는 근대 유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위치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 764-3 석성동헌을 기준으로 그 일원마을.

주변 맛집
삼오식당(우여회, 홍어전문 식당)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 541-1
(041)836-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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