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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중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전설이 남은 '검은여'

신라 의상대사와 당나라 선묘낭자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간직

2021.05.25(화) 00:26:33 | 이영희 (이메일주소:dkfmqktlek@hanmail.net
               	dkfmqktlek@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남 서산에는 ‘검은여’라는 독특한 이름의 명소가 있다.
이름만으로는 무슨 물건인지, 지명인지, 사람 별명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소의 지명이다.
 
그리고 검은여는 전해져 오는 전설과 함께 서산에서 정책적으로 잘 꾸며 앞으로 관광객들에게 소개도 많이 하고, 검은여에 대한 의미를 더욱 높게 할거라고 한다.
최근에는 주변에 대한 새단장과 각종 행사 프로그램도 만들어 진행한 바 있다.

서산시 부석면의 검은여 초입

▲ 서산시 부석면의 검은여 초입 전경

안내문

▲ 안내문

푸른 하늘과 맞닿아 묘한 감정을 남긴다.

▲ 푸른 하늘과 맞닿아 묘한 감정을 남긴다.


검은여를 소상하게 알려드리기 위해 도민리포터가 다녀왔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유래가 흐르는지 알기 위해서는 검은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통일신라시대 때 당나라 처녀 선묘낭자가 있었다. 그리고 신라에는 학문적 도량이 당대 최고였던 고승 의상대사도 있었다.
당시 어느날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길에 의상대사는 선묘낭자를 만난다.
거기서 요즘 표현으로 ‘썸’을 탔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더 정확하게는 선묘낭자의 일방적인 연모, 이를테면 짝사랑 정도였을 것 같다.
 
그러나... 의상대사가 어떤 사람인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인 고승이다.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중 중국화엄종 제2대 조사인 지엄으로부터 화엄종을 수학하고 법통을 이어받았을 정도로 학문과 종교,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의상대사는 한국 화엄종의 시조이기도 하다. 의상대사의 아버지는 신라의 진골 귀족 김한신 장군이다.

검은여 유래

▲ 검은여 유래

'부석사'(浮石寺)의 부석

▲ '부석사'(浮石寺)의 부석의 유래를 알수 있는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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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로 변한 바다여서 지형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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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위, 기암괴석의 향연이 기기묘묘하게 연출돼 있다.

▲ 검은 바위, 기암괴석의 향연이 기기묘묘하게 연출돼 있다.

팔각정

▲ 팔각정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넓어진 농토가 펼쳐져 있다.

▲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넓어진 농토가 검은여 앞에 펼쳐져 있다.


이 정도면 의상대사에 대한 프로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그리고 이 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혹은 이 정도 경지에 오른 고승이 한낱 여인과의 ‘썸’으로 학문적 도량의 길을 포기하거나 무너뜨릴 사람이 아니다.
 
결국...
의상대사를 향한 선묘낭자의 연정은 이뤄지지 못한다.
선묘낭자는 대사가 끝내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공부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대사의 득도와 무사 귀국을 빌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충남 서산에는 '검은여'라는 명소가 있다.
의상대사를 향한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곳이다.
 
귀국 후 선며낭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의상대사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의상대사는 낭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당나라 쪽 바다가 바라보이는 도비산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다른 종파 불승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선묘낭자를 위로하는 듯한 바위

▲ 선묘낭자를 위로하는 듯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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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물과 육지의 햇살에 오랫동안 풍화를 견뎌낸 바위.


이에 대사가 부처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바위로 변한 선묘낭자의 용이 나타나 3일 동안 공중에 떠다니면서 절 창건에 반대하는 불승 등을 향해 "계속 반대하면 큰 재앙을 내리겠다"라고 호통을 치자 반대의견이 모두 사그라졌다.
 
이후 공중에 떠있던 바위는 땅으로 떨어졌는데 이 바위가 곧 '검은여'('여'는 물에 잠겼다 모습을 드러냈다를 반복하는 바위섬)이고 이 검은여가 내려다보이는 도비산 중턱에 지어진 절이 공중에 떠있던 바위를 뜻하는 '부석사'(浮石寺)이다.
검은여는 검은색 바위가 마치 바닷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여 ‘부석(浮石)’이라 불리었고, 부석면의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산 부석사도 그래서 천년고찰로 이름이 높다.
 
이곳이 원래는 물에 잠겼다가 다시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곳이었는데 1987년에 천수만 간척공사로 검은여는 완전히 육지가 되었다.

바위와 육지와 하늘의 검은여

▲ 바위와 육지와 하늘의 검은여

검은여를 에둘러 흐르는 물.

▲ 검은여를 에둘러 흐르는 물.


서산시는 요즘 검은여가 있는 부석면에서 그 유래와 전설이 깃든 이곳의 경관을 개선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사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까지 많은 돈을 들여 경관개선과 주변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검은여 주변에 전석을 쌓아 호안 침식을 막고 제단을 정비해 충분한 제례 공간 등을 확보했다.
또한 산책로와 쉼터를 설치하고 그 사이에는 벚나무, 철쭉, 상사화 등 조경수를 심어 운치를 높였다.
 
지난 4월3일에는 검은여보존위원회 중심으로 맹정호 서산시장님과 다른 여러 관계자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1회 검은여제를 개최했다고 한다.
그것은 서산시와 부석면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선묘낭자의 혼이 지역 주민들을 돌봐 무병장수하고 풍년과 풍어가 되기를 기원하는 제이니만큼 그 의미도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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