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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홍성을 천년 동안 지키고 있는 홍주성

일본 침략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2020.12.09(수) 22:51:10 | 유리향 (이메일주소:dried12@naver.com
               	dried1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성군은 원래 지명이 홍주로서 충청도의 큰 고을이었다고 해요.
 
홍주성은 백제가 멸망했을 때에 부흥군의 중요 거점이었던 주류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처음 성을 쌓은 것이 언제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천년이 넘는 동안 홍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1
 
원래 성곽 길이는 1772m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810m 정도만 남아 있답니다. 그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손꼽히는 읍성 유적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2
 
홍주읍성의 옛 모습을 나타내는 안내도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고 동헌을 비롯한 관청과 군사시설, 객실, 민가 등이 성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서문과 북문을 철폐해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동문인 조양문이 복원되어 남아 있고, 남문인 홍화문이 성벽과 함께 복원되어 있습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3
 
홍주성에 들어서면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높이가 다른 기와지붕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문은 홍주 동헌의 외삼문으로 정면 3칸으로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현판 ‘홍주아문(洪州衙門)’은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홍주아문을 들어서면 옛 홍주목 자리에 현대식 건물인 홍성군청이 대물림하고 있어 이채로운 느낌이 들었답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4
 
홍주성 안에는 홍주성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홍성의 유물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행사를 하고 있으나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중단된 사업들이 많으니 확인하고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5
 
홍주성 역사관의 남쪽 구릉진 언덕은 2006년 의병공원 용지 발굴 결과 토성으로 밝혀졌다고 해요. 이 토성은 둘레가 약 500m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홍주성 안에는 각종 운동 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책 코스도 있어서 시민들이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6

홍주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습니다. 이 우물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홍주읍성 안 3개 우물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어 최근까지 식수로도 이용되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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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옆에는 둥그런 담장으로 둘러싸인 작은 건물이 있는데, 홍주옥이라는 감옥입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8
 
홍주옥 안 천주교인들이 목에 칼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 참혹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무려 113명에 달하는 천주교인이 처형당했다고 하는데, 굶주림과 목마름, 매질과 전염병, 동사(凍死)와 교수형 등으로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천주교인들은 신앙을 지켰다고 합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9
 
홍주성 안에는 홍주목사를 지낸 다섯 분의 행적을 적은 비석군이 있습니다. 원래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 밖과 금마총 주변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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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 안에 우뚝 솟아 있는 병오항일의병기념비에는 사연이 있다고 해요. 1906년 병오항일의병이 일어났을 당시 홍주성을 지키던 의병을 공격하다 관군과 일본군 일부가 죽었는데, 이때 죽은 일본군을 위해 세웠던 애도지비를 해방 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이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11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조선은 건국 초 불교를 억제하면서 사찰 건물을 부수고 거기에서 나온 부재들을 관아 건물과 유교시설을 짓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홍주성 주변의 사찰 부재들도 홍주성 관아와 성벽을 쌓을 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사실은 홍주 성벽 곳곳에 사용된 탑의 몸돌과 사찰 관련 여러 부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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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의 남문 홍화문이 성곽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홍화문은 홍주성의 남문입니다. 본래 홍주성은 네 곳에 문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세 곳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최근 발굴을 통해 과거 남문의 형태가 발견되었고, 2013년 이를 복원하여 홍화문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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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은 사라지고 없지만, 문만 동그마니 남아 있는 조양문입니다. 조양문은 홍주성 동문이요, 홍성군의 관문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양문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단정하게 홍예를 둘렀으며 쌓은 석축도 정연하고 꽤 높아서 당당한 느낌을 줍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서문을 철거하고 이듬해 북문을 철거한 후 다시 동문을 철거하려 하였으나 홍성읍민들의 결사 반대로 철거를 면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파손이 심하여 수차례 복원 작업을 거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해요.
 
홍성을천년동안지키고있는홍주성 14
 
홍주성의 역사는 주로 일본의 침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려 때부터 16차례에 걸친 왜구의 노략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에 저항해 의병을 일으킨 민세영·이종식 들이 그 이듬해에 화포 6문과 병사 1,100명을 이끌고 와서 홍주성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을 덕산으로 밀어낸 전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많은 의병이 죽었고 성도 일부만 남고 헐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웅변이라도 하듯 홍주성 한쪽에는 마스크를 쓴 소녀상이 외로이 서 있습니다. 야만적인 일제의 강압으로 일생 동안 역사의 멍울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던 아픔이 이 외로운 소녀상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홍주성도 온전히 복원·보전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 깊은 상처도 치유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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