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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누수 후 소환된 옛 추억으로 찾은 웅진초등교육박물관의 흔적

2020.10.19(월) 07:18:03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느닷없이 서둘러 온 탓에 충격과 상흔이 남았지만, 진즉에 맞이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초, 서재로 쓰던 방 천장에서 물이 샜다. 새로 도배를 하고, 장판을 깔기 위해 짐 정리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여러 권의 서책은 말려서 읽을 만한 것과 분리 수거장으로 내보낼 것으로 가려냈다.
 
누수후소환된옛추억으로찾은웅진초등교육박물관의흔적 1
 
20년도 더 보관하고 있던 비디오테이프 수백개를 버렸다.
▲20~30년 이상 보관하고 있던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해체해 봤다
 
그리고는 20대, 30대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던 비디오테이프 수백 개도 이참에 과감히 처분했다. 한 개 한 개 추억이 서리지 않은 것이 없어 라벨지에 적힌 제목을 확인하고 녹화 시기와 내용을 떠올리며 정리하다 보니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외국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없던 시기에 외국의 지인들이 녹화를 떠서 보내준 것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는 올 7월 말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하신 지인으로부터 받은 것도 눈에 띄었다.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었다.

물에 젖은 여러 개의 앨범에서 멀쩡한 사진을 가려내는 일도 얄짤없이 내 몫이었다. 사진 역시 비디오테이프 정리만큼이나 시간이 소요됐다. 값진 추억을 안겨 준 사진을 살피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들고나다 보니 손놀림이 더뎌진 탓이다.
 
누수후소환된옛추억으로찾은웅진초등교육박물관의흔적 2▲태조산 각원사의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는 청동대좌불
 
얼마 전, 천안 태조산 각원사에 다녀온 일이 있다. 함께했던 일행들과 불상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한때는 국내 최대를 자랑하던 공주 성곡사 청동좌불상과 금동 와상으로 화제가 옮겨 갔다. 

개인적으로 공주의 성곡사보다는 그 인근의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서 있던 작은 박물관이 궁금했다. 포털사이트에 '교육박물관' 또는 '교과서박물관'으로 검색을 하면 대전시나 세종시 소재의 박물관 정보만 떠서 그렇지 않아도 정보원을 물색해 오던 차라
"혹시 성곡사 근처에 있던 박물관에 대해 아는 분 계세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행에게 물었다.
"거길 여태 기억하는 분이 있네!" 신기해 하며 일행 중 한 분이 그곳을 안다며 정보를 주셨다. 
 
이름도 정확히 모르고 있던 박물관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경주이씨 형제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곳이라고 한다. 형제는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을 자료 수집에 투자할 만큼 열정을 갖고 박물관을 운영했지만, 관람객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못 받던 터라 박물관은 결국 강원도 영월에서 유치해 갔다고 한다.
 
누수후소환된옛추억으로찾은웅진초등교육박물관의흔적 3
 
웅진초등교육박물관 방문 기념품인 공책
▲'웅진초등교육박물관'에서 방문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했던 공책의 표지
 
수십 년 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에 없고 1990년대 얼었던 땅이 낮에는 녹아서 질퍽거리는 통에 좀체로 걷기 힘든 어느 날이었다. 일본에서 온 지인이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잘 알려진 성곡사를 놔두고 굳이 안내를 부탁한 곳이 그 박물관이었다. 
 
초행의 구불구불한 좁은 시골길을 한참 들어가니 소담한 초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교문에 들어서자 아름드리 고목이 인적없는 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인기척에 나와 한기가 느껴지는 실내를 덥히고자 그제야 난로에 불을 지핀다. 관람객은 없고, 관람료는 너무 비싸 성곡사로 행선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지인이 꼭 둘러보고 싶다고 간곡히 청해 도리없이 관람실로 향하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우아!" 예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전시물 수에 감탄사가 쏟아졌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교과서, 교구, 사진, 포스터 등등 긴 복도에 놓인 전시물을 둘러보고 교실을 터서 만든 전시실로 발길을 돌렸다. 퀴퀴한 냄새가 먼저 맞아주는 전시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나온 나와 달리 지인은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따뜻해진 사무실에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한참을 떠들다 건물을 나왔다. 운동장 한편에 설치된 막사에 들어가 전쟁 관련 전시물을 대충 둘러보고 귀가한 것이 박물관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사진 촬영이 보편화된 때가 아니라 사진 한 장 찍어두지 못했으니, 훗날 문득문득 그곳이 떠오를 때마다 괜스레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버리지 않았다는 확신만 있고 눈에 띄지 않아 애를 태우던 (그 박물관에서 방문자들에게 기념품처럼 제공하던) 공책을 이번 누수 때 찾았다. 그 박물관에 대한 기억이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분분했던 박물관 명칭도 정확히 알게 됐다. 웅진초등교육박물관!
 
그렇게도 검색이 어렵더니 '웅진초등교육박물관'을 검색어로 넣으니 기억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20여 년 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박물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홈페이지는 안 열리고, 전화 또한 없는 번호로 안내 멘트가 흐른다. 각원사 방문 일행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믿고 '영월초등교육박물관'도 검색해 봤다. 옛 '웅진초등교육박물관'에서 방문자 기념품으로 받은 공책이 보란 듯이 전시되어 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나 뜻있는 이들이 협동조합이라도 만들었더라면 '교육의 도시'라 불리는 공주에서 강원도 영월로 그 귀한 자료들이 건너가지는 않았을 텐데….' 애석한 심정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될 것 같다. 
 
플라스틱 공기돌
▲플라스틱 공기
 
공깃돌
▲모난 공깃돌
 
며칠 전,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나를 즐겁게 하는 추억'을 주제로 조원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중 한 분은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많이 공기'를 자주 했는데, 지금도 작고 동그란 돌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고 말씀하시며 궁금해 하는 젊은 조원들에게 놀이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요즘은 색색의 플라스틱 공기로 공기놀이를 즐기지만, 예전에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을 골라 동무들과 놀곤 했었다. '많이 공기'는 보통 5알의 공기를 쓰는 일반적인 공기놀이와 달리, 될 수 있는 대로 공깃돌을 많이 주워다 바닥에 깔고 노는 놀이라고 한다. 한 개든 두 개든 바닥에 놓인 공깃돌을 잡고 위로 던진 공깃돌 한 알을 바닥에 닿기 전에 잡으면 된단다. 바닥의 공깃돌을 건드리거나 올린 알을 놓치거나 손등에 올려 받아야 하는 알을 놓치면 차례를 넘겨야 한단다. 바닥에 깔린 공깃돌이 없으면 따온 공깃돌의 수를 셈하여 많은 쪽이 이기게 된다고 한다. 공기놀이에 관해 늘어놓다 보니 기억에는 없지만, '웅진초등교육박물관'에도 공기놀이와 관련된 자료들이 남아 있었을 법하다.

누수 때문에 젊은 시절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과 원치 않던 이별을 하게 됐다. 반면에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들을 줄이면서 그토록 찾고 싶었던 '웅진초등교육박물관' 방문자 기념품을 품에 안았고, '웅진초등교육박물관'에서의 추억을 리플레이하며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마음속에 다시 담을 수 있었다. 빼고 더해서 크게 손해 본 일 없으니 충격은 빨리 잊고 상흔은 없어지길 기다리며 중년의 추억을 켜켜이 쌓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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