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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대전 쌍청당의 송담 송담수가 만들었다는 백련지

2020.07.20(월) 08:29:58 | 서영love (이메일주소:hush7704@naver.com
               	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는 곳에서 멀지 않기에 동춘당 공원과 지근 거리에 있는 쌍청당도 자주 돌아보는 편입니다. 쌍청당은 송유(宋愉, 1389-1446)가 회덕으로 낙향한 후 세종 14년(1432)에 건립하여 거처하던 별당 건축물로 은진송씨가 회덕에 자리하며 중시조의 시작이 됩니다. 그 쌍청당을 중수한 것은 후손인 송담 송담수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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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면행정복지센터의 앞에는 정산에서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탁 트인 입구에 보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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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수는 조선 선조 20년(1587년)에 정산현감을 지내게 되는데, 이때 연못을 만들고 백연을 심었는데 이를 백련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산면행정복지센터의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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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안쪽에는 다양한 문구가 쓰여져 있습니다. 옛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해서 마치 옛날의 정자에 와서 있는 것처럼 느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김장생과 송남수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청양의 정산면이 조선시대 정산현이었을 때 현감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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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서 잠시 앉아서 쉬다가 백련지를 보기 위해 앞쪽으로 걸어서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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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수 선생은 정산현감으로도 근무하기도 했지만 벼슬길에서 멀어진 후 대전의 회덕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저서를 저술하면서 노후를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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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다리는 자오교로 일명 녹야교라고 불리웁니다. 숙종30년(1704)에 건축된 석교로 서정천에 있던 것을 새로 가설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정산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보관 중인 석재 일부를 사용하였고 부족한 부분은 유사한 석재를 사용하여 옛 모습대로 축조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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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돌 같은 것이 보여서 살펴보니 이곳은 옛 정산군의 군청이 있던 곳으로 조선 초에는 정산현이었지만, 현종조 1664년에 정산을 병합해 청양현으로 지명이 바뀌어 10년간 불리우다 다시 정산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 정산군은 청양군에 통합돼 지위가 면청으로 약화된 채 정산면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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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면 행정복지센터의 앞쪽으로 오면 기미의사 권흥규선생순열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기미년 정산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의 총에 맞고 순국하신 권흥규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6년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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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으로 인해 연 사흘간의 의거로 붙잡혀 태형을 받은 사람만도 166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기미의사 권흥규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 같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정산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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