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명성황후는 중악단(中嶽壇)에서 무슨 서원(誓願)을 했을까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내는 유일한 곳, 충남공주 신원사 중악단

2020.07.10(금) 15:28:49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중악단 산신각

배롱나무꽃이 한창 필 때쯤 왔어야 했나 싶었다. 신원사에 자주 와본 지인이 대웅전을 마주보고 말했다. 
  
1
▲신원사 대웅전

“저 왼쪽에 있는 배롱나무가 아마 다른 절 중에서 가장 오래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꽃이 피면 엄청 멋져요. 지금은 그저 초록빛이네.”
 
1
▲대웅전 앞뜰의 오층석탑인 진신사리탑 
 
비 맞은 배롱나무 초록이파리가 검초록 빛깔로 반들거렸다. 간격을 두고 바라보면 건물 주변이 거의 녹음으로 짙푸르다. 7월을 하루 앞둔 6월의 마지막 날, 그 전날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가 이슬비로 바뀌었다.
 
1
▲'오늘은 언제나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매월 만나야 될 모임의 회원들이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고, 마무리하는 끝에 사람들이 뜸한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신원사로 정해졌다. 각자 마스크 착용을 하고 손소독제와 체온기를 준비했다.
 
1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정해놓은 자리
 
동학사, 갑사와 달리 신원사를 직접 와보기는 처음이다. 오는 동안 여기저기 사방에 굿당이라고 하는 곳이 자주 보였다. 계룡산자락 아래 동쪽의 동학사가 있고 서쪽엔 갑사가 있다. 신원사는 남쪽에 있는 절이다. 그럼 북쪽엔 어떤 절이 있을까.
 
1
▲신원사 범종각
 
‘백제 말 또는 통일신라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룡사는 마을 안 널찍한 빈터에 꽤 규모가 큰 절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절이 언제 폐찰이 됐는지 밝혀지지는 않았고’ 구룡사가 있었던 ‘상신리는 절로 인해 생겨난 절 아랫마을인 사하촌’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논산계룡일보" 2014년 8월 6일 기사 일부 참고)
 
6월의 끝자락, 안개비에 스며들 듯 신원사는 조용하고 그윽했다. 주차된 차들이 보일 뿐,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회원 중 한 사람은 신원사에 왔으니 중악단에 가서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 팁이라며 덧붙였다. 
 
1
▲중악단산신각 관련 알림글 
 
1
▲중악단산신각
 
1
▲중악단으로 가는 중문간채

“중악단에서 기도할 때는 한 가지만 해야 돼. 두 가지를 빌어도 안 돼. 자기가 정말 원하는 꼭 한 가지만.”

중악단으로 가려면 대문간채를 지나 중간문인 중문간채를 또 지나야 했다. 대문간채 앞의 ‘중악단산신각(中嶽檀山神閣)’의 글이 보이는 문앞 안내글을 보니, 중악단은 한마디로 ‘나라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구릉지에 동북, 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성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1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단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인 1394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는데, ‘무학대사’는 도력이 남달랐던 분인지 지난번 서산 간월암에 갔을 때도 무학대사가 나왔던 게 생각났다.
 
중악단은 효종 2년 1651년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후 200여 년이 지나 고종 16년인 1879년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게 되는데, 현재 북쪽의 상악단과 남쪽 지리산의 하악단은 없어지고 신원사의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서 이곳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1
▲안개비 내리는 신원사
 
1
▲기와에 적힌 기도 제목들
 
1
▲노송 안으로 바라본 신원사
 
신원사의 포인트는 ‘중악단(中嶽壇)’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절들의 산신각 중 중악단은 최대 규모로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소중한 유물이다. 명성황후도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데, 그때 황후가 올렸을 간절한 기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시대상황을 짐작하면 국모로서 두 손을 모아 빌던 기도가 얼마나 애절했을까 싶다.
 
1
▲신원사 주변 계곡의 폭포처럼 내리는 물, 흐르는 물처럼 마음을 비우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중악단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대문간채에 서 있던 신원사관계자가 부드럽게 ‘보살님~, 거기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한다. 갑자기 보살이 된 내가 잘 몰랐다고 대답하고 나니 참 머쓱하다. 중악단은 부처에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계룡산신에게 기도하는 곳이다. 문득 새벽에 일어나 정한수를 떠놓고 가정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던 수많은 옛 어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원사와 그 안에 있는 중악단. 부처님과 계룡산신이 뭇 백성들의 기도를 사이좋게 받는 그곳. 대웅전 옆에는 지금쯤 배롱나무꽃이 붉게 피었을 것이다.
 
1
▲사천왕문 옆의 붉은 차, 신원사에서 신도들을 태우고 운행하는 것 같다

백일 동안이나 피고 진다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했으니, 장마 지나고 땡볕 쏟아지는 복날을 다 지나 찾아가도 배롱나무꽃은 볼 수 있으리라. 우리가 그날 찾았던 비 내리는 적막한 산사, 신원사 매표소에서는 웬일인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황토님의 다른 기사 보기

[황토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