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8월 땡볕이 잠시 주춤했다. 말복이면서 둘째 일요일이었던 11일, 날씨는 살짝 흐리고 무더웠다. 아름드리나무는 무성한 초록을 품었다. 참나무길인가 싶으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섞인다. 한 번이라도 ‘갑사’를 경험한 사람은 ‘추’갑사(‘秋’甲寺)의 절경을 기억한다. 태풍소식으로 바람결이 다르게 다가오고 마음은 벌써 단풍을 예감한다.
갑사로 가는 길목엔 축제의 흔적인 듯, 양쪽 길에 종이등이 걸려있다. 지하여장군과 지하대장군 역시 길 양쪽에 서 있다. 지하대장군 옆에는 ‘갑사 동구 장승의 유래와 복원에 즈음하여’라는 글이 있다.
▲지하여장군과 지하대장군이 양편에 세워져 있다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새겨진 글은 선명하지 않으나 ‘마을 주민이 주체가 되어 단기 4335년 음력 2월에 영구 보존을 위해 돌장승을 건립하고 그 옆에 목장승도 건립하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목장승은 없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청운교’가 나온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인지 강아지풀이 돌틈 사이로 나 있다.
▲청운교
▲해마다 괴목대신제를 지내는 곳
▲괴목대신제 유래비
▲촛불 켜는 마음
갑사를 가게 되면 그 전에 잠시 멈추게 되는 곳이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사찰의 번영과 마을안녕, 그리고 주민화합을 기원하는 ‘괴목대신제’를 올리는 곳이다. 1600여 년 된 느티나무 괴목(槐木) 앞에는 막걸리가 놓여 있고 촛불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다. 괴목은 갑사 창건 때부터 역사를 함께해 왔다. ‘괴목대신제(槐木大神祭)’ 유래의 글은 아래와 같다.
▲괴목대신제의 유래 글
“괴목(느티나무)은 임진왜란 때 영규대사와 800여 명의 승병들이 모여 작전을 세우기도 한 호국불교를 상징하는 신수(神樹)로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300여 년 전, 갑사의 작명등 기름이 없어지는 이유를 밝히고자 몰래 장명등을 지키기 시작하였는데, 덩치가 큰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 가는 것이었다. 놀란 스님들은 당장 그 물체를 찾아가니 바로 이 괴목의 당산신이었다. 기름을 훔쳐간 연유를 묻자 당산신은 사람들이 담뱃불로 이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었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갑사의 작명등 기름을 가져가 발랐다는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스님들은 마을 사람들과 괴목의 주위를 잘 정리하였다. 그 후 갑사의 작명등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마을에 돌았던 역병이 없어져 스님과 마을 주민들은 괴목의 당산신에게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그 풍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사진글 옮김 ▲곧 무너질 것 같은 20여 년 넘은 시멘트건물
▲'귀곡산장(?)'이 무성한 잎으로 가려져 있다
괴목 건너편으로는 20년 넘게 ‘귀곡산장(?)’이라고 불리는 5층짜리 시멘트 건물이 보인다. 처음 관광호텔 건물로 시작했으나 공사중단으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온 건물은, 이파리들로 일부가 가려졌지만 여전히 칙칙하게 남아 있다.
▲괴목 위쪽에 기원펼침막의 글들이 간절하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길
‘수능백일기도안내, 백중기도’ 등 펼침막의 글들이 갑사로 가는 길목에 나붙었다. 디데이에 들어간 학생과 부모들의 간절함이 글만으로도 느껴진다. 자연은 이제 열매를 맺으려는 가파른 호흡이 진행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사의 괴목 앞에서 다시 두 손을 모아본다.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