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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우리 어버이들의 어버이로부터 이어온 ‘씨앗들', 그 생명을 잇는 도서관

홍성군 홍동면의 씨앗도서관에 가다

2019.06.26(수) 17:15:36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녹음에 가려 돌에 새긴 '풀무농업고등 기술학교 생태농업과 전공부'라는 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녹음에 가려 이정표 위 돌에 새긴 '풀무농업고등 기술학교 생태농업과 전공부'라는 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든 적이 별로 없다. 근데 꼭 한 번 아주 엄한 꾸지람을 들었던 때가 있다. 어려서는 막내로 자라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는데 웬만한 잘못은 그냥 지나갔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엄청 큰 잘못을 했구나 싶었다.’

지인에게 들었던 짤막한 이야기가 새삼 다시 기억나는 한 대목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 막내인 그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단다. 학교에서 집에 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고 배가 슬슬 고파지면서 눈에 들어온 그것. 오이였다. 어린 눈에도 오이는 오인데 푸르고 생생한 오이가 아니다. 누리끼리하고 별로 맛있을 것 같지 않은 오이. 한 입 베어 우물거렸다. 맛 좋을 리 없다. 억센 껍질은 뱉었지만 씨는 여린 입에 걸린다. 그날 저녁, 밭에서 돌아온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물었다. 마당 구석에 누가 오이를 씹어 뱉어놓았느냐고.
 
그 오이는 내년에 심을 종자오이였다. 다음 번 농사에 쓸 씨앗을 버려놓은 것이다. ‘농부는 죽어도 씨오쟁이를 베고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농사에 종자를 잘 보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고, 굶어 죽어도 종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씨는 먹지 않고 남겨야 다음 농사에 심어 먹을 수 있다.
 
짙푸른 녹음과 맑은 날씨, 충남 홍성군 홍동면 씨앗도서관을 방문한 6월 25일(화)은 바람 한 점 없이 더웠다. 도서관 입구 가까이 그늘에서 쉬는 고양이는 낯선 이웃을 시큰둥하게 바라본다. 안으로 들어서니 인기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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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서 쉬는 고양이. 도서관에성 밥을 주는지 밥 그릇이 군데 군데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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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내가 풍기는 마늘

계단을 오르기 전, 씨앗도서관 관계자 분이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예정에 없는 방문이어서 많은 걸 묻지는 못했지만 도서관 이름처럼 씨앗의 소중함과 또 그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느껴졌다. 채종밭에는 여러 식물들이 풀 멀칭(풀을 베어 덮는 방법)으로 자라고, 그늘진 한 켠엔 깔아놓은 마늘이 매운 내를 풍기며 한가로왔다.  
 
날마다 먹는 음식, 그 음식에서 우리는 어떤 씨앗을 먹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아직 GMO(유전자변형생물)가 상용화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GMO를 수입해서 대량생산하는 공장을 통해 가공된 말끔한 식품을 매일 접한다.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리는 먹을거리. 우리 씨앗을 지역에서 지켜나가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들은 그래서 더 큰 가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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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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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농사지은 어르신들이 채종한 씨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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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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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서관에는 직접 농사를 지어 씨앗을 채종한 분들(주로 어르신)의 사진과 씨앗이 진열되어 있다. 손에 잡히는 병 안에는 참깨, 찰수수, 녹두, 강낭콩, 결명자, 조, 아주까리밤콩 등의 씨앗이 생명은 물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을 어르신들의 어버이, 그 어버이들의 어버이로부터 이어 온 씨앗들. 그 씨앗 한 알, 한 알에는 우주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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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오르기 전에 반겨주는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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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서관에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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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댕댕이가 이름표를 달고 서 있다
 
너와집
▲너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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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혹은 보리똥이라고 부르는 붉은 열매는 도시에서 따먹는 것보다 조금 크고 당도가 높았다  
 
햇빛이 짱짱히 내리쬐는 채종밭 근처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핥는다. 순식간에 한 마리가 공중묘기를 하듯 순식간에 나무 위로 올랐다. 집 안의 반려묘한테는 기대할 수 없는 야생의 순발력과 거침없는 움직임에 잠시 멍했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구슬댕댕이가 자기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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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서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퇴직이나 명퇴를 앞둔 주변의 지인들은 농사를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조그마한 텃밭에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직접 키우고 싶어 한다. 모종을 사다 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종을 키워 씨앗을 받기는 어렵다. 모종보다는 씨앗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씨앗을 심을까가 우선되면 좋겠다.  

홍성 씨앗도서관
충남 홍성군 홍동면 월현리 255번지
070-4351-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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