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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중고제 판소리 원류를 찾아 옮긴 삼만 보

중고제 판소리 학술세미나 열리다.

2019.05.20(월) 06:45:35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름을 재촉하는지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던 5월 18일(토), 필자는 공주시 대추골1길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잘 모르는 동네의 빗길을 걷게 된 연유는 고 죽일 놈(?)의 호기심이 발동한 때문이다. 공주시는 국립국악원 중부분원 유치를 위해 2019년 2월 18일, 유치위원회 출범식과 범시민 결의대회를 한 후 중고제 판소리에 대한 연구와 홍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중고제(中高制): 판소리 유파의 한 갈래로 경기도 남쪽 지방 및 충청도 지방에서 성행(盛行)한 유파로 동편제(東便制)나 서편제(西便制)가 아닌 그 중간에 해당하는 유파라는 뜻이다.  

중고제 판소리 학술세미나가 열린
▲중고제 판소리 학술세미나(주최: 공주시, 중고제판소리문화진흥회)가 열린 공주한옥마을 '백제방' 전경

문금서 대금연주자가 한범수류 대금산조를 연주하고 있다.
▲'문금서' 대금연주자가 한범수류 대금산조를 연주하고 있다(고수: 서용석)

박성환 명창이 이동백제 적벽가를 唱
▲박성환 명창이 이동백제 적벽가를 唱하다(고수: 서용석)

5월 16일(목) 오후2시, 공주시 한옥마을 백제방에서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중고제 판소리문화진흥회 '사재동' 회장을 좌장으로 중고제 판소리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발표에 앞서 '문금서'의 한범수流 대금산조 연주와 중고제 판소리 '박성환' 명창의 이동백制 적벽가 공연이 있었으며 토론 주제와 발표자, 토론자는 다음과 같았다.

제1 발표- 공주의 음악 전통과 중고제 명창/ 발표: 최혜진(목원대 교수), 토론: 이걸재(공주아리랑연구회장)
제2 발표- 중고제 판소리의 전승과 재창조/ 발표: 정수인(서울대 박사), 토론: 이진오(고려대 교수)
제3 발표- 중고제 판소리와 박동진 명창/ 발표: 김석배(금오공대 교수), 토론: 정병헌(전 숙명여대 교수)

이걸재 아리랑연구회장, 최혜진 목원대학교 교수, 사재동 중고제판소리문화진흥회장
▲左로부터 이걸재 공주아리랑연구회장, 최혜진 목원대학교 교수, 사재동 중고제판소리문화진흥회장

필자가 주목한 '최혜진'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판소리는 최초의 명창 최선달(최예운, 1726~1805)에 의해 18세기 전기에 그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이며, 초기의 명창들은 경기·충청지역에서 활동하였고, 판소리는 이들 중고제 명창들을 중심으로 성음, 장단, 창법 등이 개발된 것으로 여겨졌다.

최혜진 교수는 서산, 홍성, 강경, 서천, 공주 등지에서 발달한 충남 지역의 판소리 중에서도 330여 년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중고제 명창들의 활동과 근·현대 판소리 전승 양상을 살펴보고자 했다. 발표 내용 중 가장 이목을 끈 것은 고수관, 황해천, 정춘풍, 황호통, 박상도, 김석창 등 공주에서 활동한 중고제 판소리 명창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서천 출신인 이동백(1866~1949) 명창과 김창룡(1872~1943) 명창의 유허지가 공주시 대추골에 있다는 고증 발표와 토론이 있고 난 뒤, 그 두 곳만큼은 서둘러 찾아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2018년~2020년 주거환경개선사업지로 선정되어 '도시농업 활성화 거점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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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이 살던 집터(고주시 대추골1길 57-3)
▲김창룡이 살던 집터(고주시 대추골1길 57-3)

첫 번째 목적지는 중고제 판소리의 거장 김창룡 명창의 유허지였다. 김창룡 명창 서천군 횡산리(현재 서천군 장항읍 성주동)에서 태어나 홍성군 결성면 용호리에서 8년을 살았고, 호적을 홍성에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처가가 공주였고, 동향인 이동백 명창과 함께 소리 공연을 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일정 기간 공주에서 거주했을 것으로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박동진 명창께서 살아 생전 '이걸재' 선생에게 전한 바에 의하면 김창룡 명창은 이곳에서 7~8년간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집터(공주시 대추골1길 57-3)는 낮은 산 밑에 있었으며 현재 거주하는 분들이 앞마당에 소박하게 채마밭을 가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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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이 기거했던 집터(공주시 대추골3길 5-13)  

이동백 명창이 기거했다는 공주시 대추골3길 5-13은 김창룡 명창의 유허지와 달리 찾기가 쉽지 않아 고생을 좀 했다. 비를 맞아가며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고 다녔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예감에 근 1시간 여 찾아다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지대에 위치한 유허지 인근은 건물명 안내판 번호가 들쑥날쑥 제각각인데다 빠진 번호가 많았다. 박동진 명창께서도 평소에 "공주시 대추골은 1950년대 이전에는 산 밑은 전부 밭뿐이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유추해 보면 인적이 드물었을 이곳이야말로 소리하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겠는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박성환 명창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박성환' 명창

현재 이동백 명창의 '적벽가' 일부는 정광수 명창을 거쳐 '박성환' 명창에게 전승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박성환' 명창은 공주에서 이동백 소리를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박성환 명창과 한국전통문화대학 후학들
▲'박성환' 명창과 한국전통문화대학 후학들

충남중고제판소리진흥원 예술감독인 '박성환' 명창은 공주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전남대학교,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고 탐험에 가까운 행보를 하고 나니 '중고제 판소리는 충남 어느 한 지역의 소리, 어떤 한 인물로 대표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립국악원 중부분원 유치로 촉발된 중고제 판소리 연구와 전승을 위한 노력은 세미나에서 한 질의자가 발표자와 논의한 것처럼 우리도 전체의 관심을 유도하고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종합적인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일련의 성과가 얻어질 것으로 사료된다.

<이동백, 김창룡 명창의 유허지를 다녀오고 나서>
공주시 대추골을 다녀온 뒤 몇몇 자료를 뒤져 중고제 판소리를 들어보며 '최혜진' 발표자가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을 說하며 빌어온 우륵의 말을 떠올려 본다.
'낙이불류 애이불비 가위정야(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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