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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논산 광산 김씨 가문을 세운 양천 허씨 영모재

2019.05.14(화) 03:41:33 | 서영love (이메일주소:hush7704@naver.com
               	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에서 김장생과 김집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고 합니다. 그 연결성을 따라서 올라가 보면 바로 남해의 도시인 김해에 있습니다. 김해에 자리했던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이 있습니다. 그 김수로왕과 결혼한 왕비가 바로 허씨입니다. 아유타국에서 건너와서 이 땅에서 터를 잡고 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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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논산의 인물인 김장생과 김집이 있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이 크다는 양천 허씨를 찾아가는 길은 풍광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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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아유타국에서 와서 왕후가 된 허황옥의 후손 중 허선문(許宣文)은 공암촌(孔巖 :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살면서 농사(農事)에 힘써 많은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군량(軍糧)을 보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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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양천 허씨가 자신의 자식을 잘 키운 것을 기리며 제사를 올리는 영모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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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공으로 인해 허선문은 고려 건국에 대한 공으로 삼한 공신이 되었습니다. 공암이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지명이 바뀜에 따라 양천 허씨(陽川 許氏)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양천 허씨의 후손 중 한 여성이 지금의 논산으로 내려와 정착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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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후손 중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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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영모재의 건축 연대는 불분명하나 문채의 대들보에 ‘경인년 상량’이라고 쓰여 있어 연대를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재실 내부에는 1975년의 중수 기록인 「영모재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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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367호로 지정된 논산 영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며, 바닥이 1단 높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양천허씨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 참배객들이 기거하는 고택과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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