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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벚꽃 질 때 만난 뜻밖의 역사

벚꽃 지는 동학사 언저리를 걷다.

2019.04.22(월) 18:57:36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벚꽃만이 꽃인 양 하던 시간이 지났습니다. 수십 년 넘은 고목에 피어나던 벚꽃이 지면서 벚꽃을 에워싼 연둣빛 이파리에 힘이 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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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니 비로소/ 그 나무 아래를 지날 용기가 납니다./ 하마 벚꽃 핀 날이 길었더라면/ 나는 내내/ 당신을 향한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겁니다./ 눈부심이야 당신만으로도 족한데/ 꽃 멀미도 멀미려니와/ 벚꽃을 배경으로 한 세상은 퍽이나 황홀해서/ 종내 앞을 볼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중략)… /꽃그늘이 한창인 동안에는 마음만 졸이다가/ 아, 그 그늘에서 웃는 사람들만 부러워하다가/ 마침내 벚꽃이 졌으니/ 용기를 내어 당신을 찾습니다. -<벚꽃이 진 날에,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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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벚꽃축제가 지나간 평일의 어느 날, 동학사 언저리를 걷는 길에는 산비둘기 소리가 고즈넉함을 더합니다. 벚꽃에 취했던 눈은 이제 초록으로 달려가는 연두의 힘찬 생명력을 봅니다. 눈부시게 화려한 벚꽃만큼이나 마음은 더 없이 꽃 진 자리에 머뭅니다. ‘바람의 선’을 따라 흐르듯 흩어지는 덧없는 꽃잎. 열매는 그 길을 넘어서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계룡산국립공원 이란 글이 새긴 비석
▲ '계룡산국립공원'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

관음사로 가는 조붓한 길
▲ 관음사로 가는 조붓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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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리에서 동학사로 가는 길, 차를 타고 갔을 때는 보지 못한 ‘계룡산국립공원’이란 비석을 만난 건 걷기의 미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석을 새긴 날짜가 1974년 10월 9일이니 45년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동학사를 오르는 작은 샛길로 들어서니 관음사라는 소박한 절이 나옵니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듯 길을 따라 등이 걸려 있습니다. 관음사는 현재 공사 중이어서 더 이상 진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동학사로 가는 길에서 만난 펼침막
▲ 동학사로 가는 길에서 만난 펼침막

펜션과 음식점, 카페가 이어지는 동학사 가는 길 가장자리. 그 길에서 펼침막 하나가 눈에 띕니다. 4월 19일(금) 오전 11시 숙모회(肅慕會)에서 주관하는 ‘숙모전(肅慕殿), 삼은각(三隱閣), 동계사(東○祠) 춘향대제(春享大祭) 봉행(奉行)’입니다. 쉽게 들어오지 않은 한자 한 글자씩을 짚어가며 짐작만으로도 엄숙하게 제를 올리는 사실일 것이란 짐작이 들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에 자주 나오는 고려시대 문인 이색, 정몽주, 길재 세 사람의 호를 알기 쉽게 알려주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목포야 울지마라 이정길은 떠나간다.’ 로 외우면 ‘목포야’와 ‘이정길’이 짝이 되어 목은(牧隱)은 이색, 포은(圃隱)은 정몽주, 야은(冶隱)은 길재 등 쉽게 ‘삼은(三隱)’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던 선생님. 그 시절 그렇게 외웠던 내용들이 이렇게 새삼 동학사 앞에서 다시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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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점심 장사로 움직임이 빨라진 음식점 관계자가 차들이 엉켜 있는 곳에서 주차 안내를 합니다. 주변은 거의 검은 승용차입니다. 시간으로 보아 제사가 이미 끝났음을 알리듯,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중간에 옥색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들이 몇몇 보이기도 합니다. '숙모(肅慕)'란 '엄숙하고 정중하게 그리워함'이란 뜻인데, 언제부터였는지 봄·가을에 춘향대제(春享大祭), 동향대제(冬享大祭)로 두 번 제사를 올린다고 합니다. 음력 3월 15일에 올리는 ‘춘향대제일'은 약간 흐렸던 4월 19일(금)이었습니다.

늦가을에 올리는 ‘동향대제’는 음력 10월 24일에 제를 올린다는데, 그 날이 단종 승하일이라고 합니다. 동학사를 그저 유서 깊은 절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문득, 계절 따라 보이는 절정의 아름다움이 숙연함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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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볍게 동학사 언저리를 눈에 담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동학사는 묵직한 역사로 만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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