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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추사 김정희 암각화, 화암사

2019.04.19(금) 16:42:55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추사김정희암각화화암사 1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 뒷산 용산은 오석산과 앵무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석산이라 부르는 추사고택 뒤의 작은 봉우리를 앵무봉이라고 부른다. 추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 왕으로부터 이 일대를 별사전으로 하사받으면서 개인원찰을 짓게 되었다. 가문의 안녕과 복을 빌기 위해 1846년에 절을 중건하던 시기 제주도 귀양살이하던 추사 김정희는 화암사 중건 상량문과 무량수전 현판, 시경루 현판을 써서 보냈다. 이 현판들은 현재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추사김정희암각화화암사 2

추사 김정희가 24살 되던 해에 청나라 연경에 동지 겸 사은부사로 떠나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자제 군관의 자격으로 갔을 때 78세의 대학자 옹방강을 만나서 필담을 나누었다. 옹방강은 추사의 뛰어난 학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동방해동제일통유(東方海東第一通儒)'라는 칭호를 내리고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당시 추사는 옹방강의 서재에서 대련과 석순에 새겨져 있던 문구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과 시경헌에서 비롯된 시경루(詩境樓)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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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암사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했던 추사 김정희는 청나라에 갔을 때 사제지간을 맺었던 스승 담계 옹방강을 상징하는 문구들을 화암사 뒤편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는데, 그것이 시경(詩境)과 천축고선생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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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에 예서로 쓴 시경(詩境)이란 글씨는 송나라 시인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인 육유의 글씨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중국 연경에 갔을 때 스승인 담계 옹방강에게 받은 탁본 글씨를 새겨놓은 것이라 한다. 일각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추사는 이 좋은 글씨를 후대에도 감상할 수 있도록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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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김정희암각화화암사 6 ▶천축고선생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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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입구에는 수령 200~300년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신암면 용궁리 222).

추사김정희암각화화암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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