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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백제의 역사 노성산성과 노성산

2019.04.07(일) 13:40:52 | 계룡도령춘월 (이메일주소:mhdc@tistory.com
               	mhdc@tistory.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논산 여행 가볼 만한 곳 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노성산에는 사적 제 393호로 지정된 노성산성과 노성산 야생화를 만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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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은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전투가 펼쳐진 백제의 마지막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인 지역이랍니다.

노성면과 상월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348m의 노성산(魯城山)에 있는 논산 노성산성(魯城山城)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석성으로 연산의 황산성과 함께 백제가 신라와 대치하는 국면에서 주변 평야를 조망하고 관찰하는 최후의 방어선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백제(百濟)가 적으로부터 수도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해 주요 교통로인 노성에 쌓은 성입니다.

그러한 노성산은 산자락에 기호유학의 중심이라 할 명재 선생의 고택은 물론 궐리사와 노성향교까지 있는 대한민국 200대 인기 명산에 포함돼 있으며 충남 100대산에도 드는 명산입니다. 노성산에는 논산 8경 중 하나인 노성산성이 있는데, 노성산은 원래 이산(尼山), 진산(鎭山), 성산(城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효종 때부터 노성산(魯城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성이란 지명은 당나라 점령 후 노산주(魯山州)로 고쳤다가 나중인 신라 경덕왕 때 이산현(尼山縣)으로 불리었는데, 이를 1800년 조선 순조 때 나성현(魯城縣)으로 고쳤고 하는군요. 이곳의 지형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 노나라 이구산(尼丘山)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노'(魯) 자를 따고 이산(尼山)이 성을 상징한다고 해서 '성'자를 따서 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합니다.

논산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으로 오르는 방법은, 명재고택을 지나 노성산성 길을 통해 애향공원에서 정상까지는 약 1.8km 정도 오르거나, 아니면 노성면 가곡리를 지나는 명재로에서 들어서는 길이 있는데 이번에는 명재로에서 노성산에 임도를 통해 올랐다가 명재고택으로 돌아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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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만첩백매가 환하게 피어 반겨주고 양지꽃이 노랗게 피어 있는 모습은 봄마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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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따라가는 길은 의외로 거리가 먼데 정상까지는 약 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이니 제대로 걷기에 딱 좋은 것 같죠? 다시 이 길로 나온다면 왕복 2~3시간 정도 걷는 것이니 운동 삼아 산책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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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성까지 가는 길에는 의외로 다양한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데 상록수가 없는 구간 숲의 여기저기에서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불리는 진달래가 피어 있습니다.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이면 진달래꽃을 뜯어다가 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 지지는 꽃전[花煎]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술을 담가 두견주로 즐기기도 했답니다.

산괴불나무 꽃도 보였는데 잎과 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산괴불나무의 붉게 익는 열매는 식용하고 어린잎과 꽃을 차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꽃의 색상에 따라 괴불나무, 산괴불나무, 털산괴불나무, 넓은잎산괴불, 홍괴불나무, 올괴불나무 등 다양한 이름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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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드러나는 노성산성은 근래 들어 새롭게 증축한 것인데 판석식으로 쌓은 삼국시대식의 산성 증축이 아니라 메주 형태로 돌을 다듬어 축성한 조선시대식 석성으로 증축해 어딘가 전체적으로 조금 미묘한 부조화가 느껴지기는 해도 그 옛날 멀리 부여를 비롯해 공주와 완주, 익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성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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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성 남문지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비밀의 벽처럼 막아서 있는데 혹시 무슨 비결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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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구에는 총석사(叢石寺)라는 새김 글과 좁은 바위틈으로 길이 나있습니다. 예전... 아마도 오래 전 총석사(叢石寺)의 일주문 역활을 한 것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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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비밀의 길(?)을 지나오면 이런 모습으로 변한답니다.

마치 일부러 세워 놓기라도 한 듯 우뚝 선 바위에는 왼쪽부터 '관세음보살'로 추정되는 선각 마애불이 보이는데 노성산은 또한 우리 민속신앙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도 하지요. 제일 높은 바위에는 삼신암, 그리고 비밀의 길 우측에 제일 키 작은 바위에 칠성암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민속신앙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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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총석사(叢石寺) 자리는 금강대도 노성본원이 자리해있습니다. 외부의 모습은 마치 불교의 사찰 같지만 입구에는 금강도덕문, 중심전각에는 삼종대성전(三宗大聖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유불선[유불무] 삼교를 통합한 신생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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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본원 뒤에 자리한 금강삼종대성사부성산의 묘소의 모습입니다.

고려 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킨 이른바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8세 손 토암(土庵) 이승여(李承如·1874-1934)가 유불선 삼종일합(儒佛仙 三宗一合)을 중심교리로 표방하며 금강대도(金剛大道)를 창교했는데 이승여는 고려시대 이색(李穡)의 18세 손으로,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났으며 1898년 서자암(徐慈庵)과 결혼하여 자신은 금강도사(金剛道師)라 하고, 서자암은 연화도사(蓮華道師)라고 하며 금강산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포교의 길에 나섰다가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많은 제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23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구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에 성전을 짓고 교화에 힘쓰다가 1934년에 사망하였으며 1937년에 장남인 이성직(李成稙)이 도통을 계승하여 교리 및 예법의 체계화에 주력하였고, 1941년에는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에 의해 성전이 헐리고 10여 명의 제자가 순교하는 등의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 불교에 편입되기를 원했으나 금강대도 제2대 도주였던 이성직의 거부로 여의치 않자 1941년 일본 경찰이 법당에 난입하여 수십 명이 연행하고 법당을 파괴하기도 하였다는군요. 

그런데 이 사건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였던 공주 갑부 김갑순의 밀고로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김갑순은 금강대도교가 설치한 단군성전을 압수한 뒤 건물을 헐고 조선총독부 역대 총독의 사진을 진열한 열전각(列傳閣)을 건립하여 참배하도록 강요했고 자재는 옮겨다가 자신 소유의 호텔을 짓는 데 사용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1957년 2세 도주 이성직이 죽고, 1964년에 3세 도주로 장남인 이일규(李一珪)가 도통을 계승하여 도장의 성역화 및 종단 조직의 확대에 주력하여 현재 전국에 1백여 개의 본원·분원 및 회관을 두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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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노성본원에서 노성산 정상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도착하는 거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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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에서 생강 향이 나는 노란색의 생강나무도 만났는데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머리 단장에 사용하는 동백기름의 생산량이 적어 주로 왕실이나 사대부 집 여인들만이 쓸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동백기름을 구하기 어려워 생강나무 등 다른 나무 열매의 기름을 짜서 사용해서 동백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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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48미터의 노성산 정상에 올라서면 1998년 논산시에서 건립한 니성산정(尼城山亭) 이라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가 놓여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동쪽으로 시원하게 툭 열려 있어 아주 멋진데, 서쪽으로는 논산시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공주와 부여가 보이며, 또 남쪽으로는 황산벌과 그 너머 대둔산이 바라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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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의 동쪽으로 보이는 병풍처럼 둘려진 계룡산(845m)의 웅장한 모습인데 충청남도에서 서대산(904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어째 노성산 아래에 있는 듯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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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산성의 북쪽에 위치한 성벽 위에서 바라보이는 모습은 백제의 멸망과 연결된 부여와 공주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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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물을 긷는 모습이 보이죠?

노성산성 내에는 지금도 사용하는 우물이 4곳이 있으며 산성에서는 많은 토기편과 기와편 및 도자기편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질 토기편이 주를 이루고 기와편은 승석문(繩蓆文), 격자문(格子文), 평행선문(平行線文)인 회색, 회청색, 회갈색의 연질(軟質)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문양이며 경질 및 연질의 어골문(魚骨文)과 경질의 청해파문(靑海波文), 그리고 복합문(複合文)이 시문된 와편도 포함되어 있고, 도자기편으로는 분청사기와 백자편이 출토되었답니다.

노성산, 노성산성에서 명재고택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다양한 휴식처와 황토지압로가 있어 가볍게 운동을 하고 휴식도 충분히 취할 수 있어 보였는데 맨발로 한번 걸어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논산 여행지 추천하는 논산 가볼만한곳 백제의 역사 노성산성과 노성산 봄 야생화 탐사는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도 꼭 한 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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