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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새봄이 움트는 '언덕 위의 붉은 집'

'공주중학동 구)선교사 가옥'을 다녀오다.

2019.03.05(화) 20:01:14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쪽지골길
▲ 공주시 중학동 쪽지골길로 '공주중학동 구)선교사 가옥'을 오르다.

3.1만세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기념사업이 벌어지던 지난 3월 1일(금), 필자는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목적지인 공주중학동 '구)선교사 가옥(이하 선교사의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공주영명고등학교 운동장 ▲ 공주영명고등학교 운동장을 통해 '공주중학동 구)선교사 가옥'을 오르다.

공주 중학동 고상아리길
▲ 공주 중학동 고상아리길을 통해  '공주중학동 구)선교사 가옥'을 오르다.

'선교사의 집'은 공주영명고등학교 운동장 뒷길로 찾아갈 수가 있다. 공주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골목을 지나 고상아리길을 거쳐 현대연립 측면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찾기 쉬운 곳에 위치한 이곳을 그동안 등한시한 이유는 붉은색 건축물에서 풍기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인 한 분이 뜻 깊은 날이니 함께 가보자며 제안을 해 주어 그러한 부담감을 덜고 동행하게 되었다.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사 제막식 준비
▲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와 공주 항일만세운동사가 적힌 현수막이 '선교사의 집'을 오르는 길목에 걸려 있다.

공주영명고등학교 건물에 '공주시에서 유관순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걸었던 현수막도 동상 건립에 맞춰 옮겨왔다고 한다. 현수막의 내용은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한 다음과 같은 공주시의 항일 운동사였다.

1. 유관순은 누구인가?
2. 유관순과 사애리시 선교사의 만남
3. 공주에서 2년간 유관순의 발자취
4. 유관순과 3.1 만세운동
5. 공주의 3.1만세와 영명학교
6. 오늘의 유관순으로 살아가자!
7. 공주 유관순 관련 사업 추진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제막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 (사) 한국선교육적연구회 샤프선교사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제막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3월 1일(금), 찾은 '선교사의 집'에서는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제막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미국 감리회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은 왜 이곳 '선교사의 집'에 함께 세워졌을까?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의 만남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05년 공주에서 영명여학교를 세워 신교육 활동을 펼치던 미국 감리회 사애리시 부인이 야무지고 당찬 소녀 '유관순'을 만나게 된 것은 부흥회 인도를 위해 천안 지령리 교회(현 매봉교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소녀 유관순을 수양딸 삼아 공주로 데려와서 1914년 4월 영명여학교 보통과에 입학시킨다. 그리고 소녀 유관순은 1916년 영명여학교에서 2학년 과정을 마치고 경성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으로 편입한다. 스승 사애리시 선교사는 이화학당 재학 중에도 교비생으로서 유관순 열사가 학비를 면제받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생활비 지원도 해주었다. 유관순 열사는 공휴일이나 방학 때에는 천안의 집보다 공주에 내려와 스승 사애리시 선교사를 도와 전도 활동을 다녔다고 한다. 사애리시 부인과 함께한 일련의 활동은 소녀 유관순의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움트게 한 시기가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공주 중학동
▲ '공주 중학동 구)선교사 가옥'-공주시 쪽지골길 18-13/충청남도 등록문화재 제233호

드디어 멀찍이서 바라만 보던 '선교사의 집' 앞에 당도했다. 든든한 동행인이 있고, 3.1항일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특별한 날이어서일까?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그간의 '선교사의 집'에 갖고 있던 두려움은 전혀 감지해 낼 수 없었다. '선교사의 집'은 미국인 선교사 샤프 목사가 설계하여 1921년 10월에 중국인 목수가 시공한 서양식 주거시설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한국에서의 원활한 선교 활동을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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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하지 않는 창고와 음수대가 보인다.

현재 개인이 선교센터로 활용하고 있는 '선교사의 집' 마당에는 사용하지 않는 음수대와 창고도 눈에 띄었다. 특히 창고는 '선교사의 집'을 소개하는 사람마다 두려움을 표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용기 내어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못쓰게 된 화구와 잡동사니들이 버려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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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교사 가옥의 배치와 당시
▲ 40~50여 년전 구)선교사 가옥의 배치와 주변 상황을 설명하는 '김정화' 문화해설사

선교사 사택은 본래 4채였다고 한다. 그 산증인이 이날 함께 필자와 동행한 국립공주박물관 해설사로 10여 년간 자원봉사를 하는 '김정화' 선생님이다. 유년 시절 그녀는 이곳 '선교사의 집'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공주교육대학교 여자 기숙사로 활용되던 때에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여대생들이 세면도구를 챙겨 언덕 아래의 샘터에서 세수하던 모습도 지금도 선하게 기억한다고 말한다. 영명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을 놀릴 요량으로 사탕이나 푼돈을 걸고 노래를 시켜 종종 아이스케키를 공으로 얻어 먹으려고 자신도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동년배의 지인을 만나 40~50여 년 전 '선교사의 집'을 둘러싼 공주의 역사를 이야기하던 김정화 선생님은 언덕 아래 공주영명고등학교 근처에 선교사 가옥 3채가 있었다며 손끝으로 가리켰다. 현재 남은 건물은 (창고의 화구들을 봐서도) 공주교육대학교 기숙사로 쓰였고, 현재 남아 있는 '선교사의 집'은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 아니고 소사(비정규직으로 학교 관리를 맡아 하던 사람)가 쓰던 건물이었다고 전했다.

골짜기를 타고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 골짜기를 타고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동상 제막식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의도치 않은 방해를 하고 다니는 듯도 하고, 행사 참석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마음먹고 찾아온 '선교사의 집'을 제대로 둘러볼 수 없을 것 같아 동상 제막식이 시작되기 전 우리 일행은 자리를 떠나왔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보니 골짜기 밑으로 여전히 졸졸 물이 흐르고 있었다. 끝내 그 물줄기의 끝을 찾지 못하자 작은 욕심으로 파고 덮고 하는 사이에 변해 버린 옛 흔적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아쉬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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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이틀 뒤 다시 한번 '선교사의 집'을 찾았다.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봐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성금 모금으로 건립된 동상을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의 만남에서부터 한국 근대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곱씹으며...

잃어버린 봄을 찾아 꽃을 피우는
▲ 잃어버린 봄을 찾아 싹 틔울 채비에 나서는 '수수꽃다리'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열사 동상 옆으로 '수수꽃다리(라일락)' 두 그루가 식재되었다. 빈 가지 드러내고 서 있는 두 그루의 수수꽃다리는 앞으로 어여쁜 꽃송이 피울 날을 맞기 위해 거친 비바람을 이겨낼 것이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아름다운 봄날을 새롭게 맞이할 것이다. 한국 여성의 개화와 근대 교육을 위해 타국에서 헌신한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왜 제 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른 것이 죄가 되느냐!"며 끝끝내 재판정에서 굴하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의 숭고하고 높은 뜻이 2019년 봄날에는 더욱 활짝 꽃피울 수 있기를 오늘 나는 또 간절히 염원해 본다.
 
【방문 후기】
'선교사의 집'은 1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공주영명학원의 발자취이자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한국 여성의 개화와 근대 교육을 이끌어온 선구자들의 본산이다. 늦게나마 그 영광된 곳을 찾아올 수 있도록 동행해 주시고, 어디에서도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산 역사를 소상하게 들려주신 김정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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