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황새바위성지를 찾았다.
충남지역에는 유난히 천주교 성지가 많이 있다.
서산, 예산, 천안, 당진, 보령 등이 그러하고 특히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순교자 337위로 우리나라 최대 순교자를 기록한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서산 해미성지, 예산 여사울성지, 천안 성거산성지, 당진 신리성지 등과 함께 충청남도 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된 곳이다.
황새바위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가장 심했던 18세기 100여 년 동안(1797~1879)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공주 지역의 천주교 박해는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기묘년(1879년)까지도 계속되었다. 당시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시대에 충청도 감영이 있던 공주로 압송된 천주교 신자 수백 명이 순교하였다.
황새바위는 과거에 황새가 많이 서식하여 황새바위라 불렸는데 이곳은 일반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이기도 하여 죄수의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되었다 하여 황새바위 또는 항쇄바위라고도 불린다.
몽마르뜨 광장, 석문을 지나면 순교탑과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빛돌,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벽면에 새긴 무덤경당이 있는 순교자 광장이 펼쳐진다.
▲ 무덤경당
처음에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한국교회사, 승정원 일기 등의 자료 등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알려진 순교자가 337위이며 현재에도 순교자들의 이름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103위 성인품에 오른 손자선 토마스 성인은 살을 물어뜯어 신앙을 증거하라는 말에 주저 없이 자신의 살을 물어뜯어 증거하였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하지 않던 세상에 태어나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수많은 순교자들, 현대에는 종교의 자유가 너무 난무하여 어느 것이 진짜 종교인지 모를 세상이라 이들의 희생이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유독 황새바위에 순교자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해시기에 선교사가 충청도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관련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교회 전체를 8개 사목구로 정하였고 공주는 성모영보구역으로 선포되었으며 당시 포교지 8개 구역 중 4곳이 충청도였다.
▲ 묵주기도 길
▲ 성모상
황새바위성지는 크게 십자가 길, 옛기도문 길, 빛의 길, 묵주기도 길로 이루어져 있다. 날씨도 선선하고 걷기 좋은 요즘같은 가을날에 주제별 길을 따라 전체를 다 돌아보아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공주 황새바위순교성지
충청남도 공주시 왕릉로 118 (금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