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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하나가 통하면 만 가지가 통하는 소통의 시대

공주 원효사 '대통사지' 제등행사의 의미

2018.05.25(금) 09:12:35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가통하면만가지가통하는소통의시대 1▲ 대통사지 발굴 경축 현수막

지난 4월부터로 기억한다. '백제문화사랑연구회'는 '대통사지' 발굴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공주 시내의 곳곳에 내걸어 두었다.

그리고 4월 이후부터 지역 신문에는 공주시 반죽동 한옥신축부지 내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2018년 1월 15일~4월 2일) 의 결과 보고를 시작으로 공주시 지식인들의 '대통사지'를 둘러싼 기고 글이 빈번하게 게재됐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우리 문화유산을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공주시 반죽동 대통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150호인 공주시 반죽동 당간지주 (후면)

『삼국유사』에 따르면 '대통사(大通寺)'는 백제 성왕 5년(527년)에 양나라 황제를 위하여 창건했다고 한다. '반죽동 당간지주'는 웅진 도읍기에 창건된 백제사찰의 존재를 구체화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일컬어진다.

1999년 '반죽동 당간지주' 주변 지역에 대해 발굴조사를 진행했으나 '대통사지(大通寺址)'와 관련된 유구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사'의 금당이나 사역의 정확한 위치를 두고 주변의 다른 장소를 거론하며 '반죽동 당간지주' 역시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것이라는 주장으로 분분했었다.

봉황큰샘
▲ 봉황큰샘(공주시 봉황동 378-1)

한편 몇 가지 근거를 들어 현 '반죽동 당간지주' 가 위치한 곳이 '대통사'였음을 주장하는 의견도 팽팽했다. 그 첫 번째 근거는 인정하기 싫지만, 백제문화와 역사 연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인 가루베 지온(脛部慈恩)이 남긴 자료이다. 그는 1930년대 공주고보(현 공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송산리 6호분을 처음 조사한 인물로 대통사지 발굴 작업이 있을 때마다 작업 현장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남겨 두었다.

두 번째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북혈사지를 배제하고도 남혈사지, 서혈사지, 동혈사의 위치로 추정해 봤을 때 대통사는 현 '반죽동 (대통사지) 당간지주'가 위치한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외에 1980년대 초까지 마을 부녀자들이 사용하던 봉황큰샘(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4호)은 본래 궁정(宮井)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는데, 현 공주대학교부속고등학교 교정에 위치했던 충청도 감영 또는 대통사의 전용 샘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큰샘에서 지척 거리에 위치한 현 '반죽동 당간지주'가 대통사지로 맞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문화재 발굴 현장▲ 한옥 신축부지 내 문화재 발굴 현장     
 
그런데 양립하는 주장에 종지부를 찍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윤○○ 씨는 2017년 시골에서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쾌적한 공간에서 편히 모시고자 1989년부터 3대에 걸쳐 소유하고 있던 곳에 한옥을 신축하기로 하고 공주시의 한옥지원사업에 신청한다. 2017년 12월 말까지 완공을 약속하고 건설업체에 철거, 설계, 건축, 인허가 대가로 5천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원상복구를 조건으로 이웃집 담장까지 허물어 놓은 상태에서 건축 부지가 '반죽동 당간지주' 사방 500m 범위내에 들어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후 2만여 점의 기와와, 치미, 수막새, 전돌 등 다수의 문화재가 발굴된 것이다.

그러나 관련 조례가 마련돼 있지 않은 공주시는 토지 소유주의 피해구제 요청에 따라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발견되지 않아 대통사터로 한정하기 어려워 문화재 지정이 곤란한 상황에서 보존조치만 할 수 없다'는 요지의 건의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1971년 처녀분인 무령왕릉 발견 당시의 축제 분위기와 사뭇 다른 국가·사회적 분위기와 관련법의 미비에서 온 실망스런 후속조치는 15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통사지 발굴에 환호하던 학자, 불교계, 문화계 지식인들을 뿔나게 했고 수심에 들게 했다.

다행히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문화재청과 관계기관에서 발굴 현장에 건축하지 않고 보존을 하기로 했고, 토지주도 백제 문화와 역사 연구에 새 지평을 열어줄 문화재 보존에 공감하여 협조하기로 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공주 원효사 석해월 스님▲ 원효사(공주시 우금티로 431-16/041-855-2839)석해월 스님:작년 북혈사지로 추정되는 '북가섭암' 탐방에서 천미장군물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계시다.

삼국시대 3대 사찰로 알려진 '대통사'의 원형을 찾아 긴 세월 문헌연구와 현장답사를 수없이 반복해 온 공주 상왕산 원효사 '해월'스님은 문화재청과 토지주의 결정에 누구보다 기뻐한 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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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 원효사 대통사지 제등행사를 주관하신 해월 스님 

5월 22일(화) 오후 6시 30분 비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속에서 예정한 원효사 '대통사지' 제등행사가 시작되었다. 우천으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분도 많았지만, 원효사 신도님들과 공주교육대학교 대불련 학생들, 원효유치원 원생들과 부모님 등 100여 분이 작년에 이어 의미 있는 행사에 동참해 주셨다.
 
특히 이 자리에는 20세까지 현 '반죽동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살았다는 한 신도님이 당시 살던 집의 위치와 우물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현 위치에서 10m가량 동쪽에 당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공주교육대학교 청목관에 있던 당간지주를 옮겨왔다는 일설을 일축하는 순간이었다.

'반죽동 대통사지 당간지주' 제등행사
▲ '반죽동 대통사지 당간지주' 제등행사

정진 법회를 마치고 해월 스님의 뒤를 따라 행사 참가자들은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제등행렬을 시작했다.

제민천 제등행사▲ 제민천 제등행사

예정했던 제민천 제등행사는 비 때문에 행여 연세 드신 어르신들과 어린 유치원생들이 몸 상할까 걱정되어 일정 구간만 지나는 것으로 행로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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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우체국과 공주문화원을 지나 공주역사영상관 옆 '시간이 정지된 공원'에 빙 둘러서 원형을 그렸다. 행사참여자들은 해월 스님이 말씀이 떨어지자 고개 숙여 서로에게 "성불하십시오.'' 인사를 나눴다. 나는 불신도가 아니어서 불경 한 줄, 찬불가 한 소절 따라 부르지 못했지만 대신 이날 모인 분들과 거룩하고 성스러운 마음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발굴현장으로 가는 골목길▲ '봉황로' 발굴현장으로 가는 골목길의 제등행사 참가자들 
 
가로등이 안 들어와 옆 사람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컴컴한 좁은 골목을 너도나도 옛 추억담을 한 마디씩 곁들이며 지나간다.

"기왓장 나온 데가 여기였어?"
"리어카(=손수레) 끌고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나 초등학교... 아니지! 그때는 국민학교지. 꼭 이길로 다녔는데 그대로네~"
"30년 전?"
"아니. 벌써 40년도 더 됐지~."

범부들의 일상이 펼쳐졌던 미로 같은 이 골목길이  옛 백제 고도의 중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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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월 스님, 석용현 작가님, 임동식 화백님과 공주교육대학 대불련 학우들

해월 스님과 함께 '대통사지' 발굴을 누구보다 반기고 자랑스러워한 '임동식(백제문화사랑연구회 대표)' 화백님과 '석용현(한국백제 관광아카데미 연구소장)' 작가님도 제등행사를 끝마칠 때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셨다. 이분들이 근심을 내려놓고 보이는 미소가 아름다운 밤이 시나브로 깊어만 간다. 

원효사 대통사지 제등행사 참가자들▲ 원효사 대통사지 제등행사 참가자들  

1500년 전 옛 백제의 흔적을 확인한 영광스럽고 기념비적인 자리에 선 사람들이 비 내리고 쌀쌀한 날씨에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미소는 연등을 들고 어른들을 따라 온 어린 자녀들이 먼 훗날 그 자녀들을 데리고 해마다 다시 이 자리에서 지어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도이미지 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옛 백제 모습 재현을 서두르기보다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무한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 우선하길 바라며, 1500년 전 백제사 연구의 단초가 마련된 만큼 만인의 애정 어린 관심을 보태 힘을 실어 주길 행사 갈무리에 나는 축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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