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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나 어릴적 설날은!

애독자마당 - 도민리포터 이점희

2018.03.06(화) 17:53:1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젊어서는 꿈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던가? 자고나면 아파트와 빌딩이 쑥쑥 올라간다. 쭉쭉 잘 뻗은 길과 속도 빠른 교통수단이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주는 뒤편엔 잊혀져가는 풍습에 대한 그리움도 숨어있다.

 

나 어릴 적 설날 이야기다. 손가락을 세며 그렇게 기다리던 설날 아침 제사가 끝나기 무섭게 부모님께 절을 하고 뛰어나가면 골목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합세하여 밑에 집부터 차례로 세배를 한다. 한조각의 사과와 다식 몇 알로 차린 상과 덕담을 들었다. 이런 끈끈함이 마을 어른들을 공대하고 얌전을 부릴 수 밖에 없었다. 풍습으로 배우고 익히던 미풍양속이였다.

 

초삼일 날이 되면 귀신날이라고 해서 쌀가루 내리는 체를 기둥에 걸어놓고 모든 식구들의 신발을 엎어놓고 잠을 잤다. 밤중에 귀신이 찾아 왔다가 신발을 신어보고 귀신발에 맞는 신 임자를 잡아간다고 한다. 그러다 걸려있는 체를 보고 체 구멍을 세어 보는데 정신이 빠져 있다가 새벽닭 우는 소리에 경풍을 하고 도망을 간단다. 귀신도 지혜만 있으면 물리칠 수 있다는 조상들의 해학담긴 풍습이리라.

 

2월 초하루가 되면 이날을 영등날이라고 해서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신인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고 했다. 딸을 데리고 내려오면 치맛자락 나부껴 예쁘라고 바람을 불게 한단다. 바람이 불면 그 해는 풍우가 심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

 

그러나 며느리를 데리고 내려올 때는 며느리 치마 젖으라고 심술로 비를 내리게 한단다. 그래서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단다. 며느리들은 딸보다 시집을 와서 살아야함으로 후덕함과 인내가 있어야 했던 시절 표현답다. 영등신에게도 고부갈등과 시누이 갑질이 있었나보다. 또 영등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했는데 정월 잠깐 쉬던 농사 일손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머슴들은 사립문을 붙들고 울었다고 한다. 주인은 갖가지 소를 꽉꽉 채워 만든 큼지막한 송편을 푸짐하게 해 먹였다고 한다. 일년 내내 힘써 일하라는 격려의 음식이었으리라 .

 

산업화가 되면서 이런 농경사회의 풍습도, 이야기도, 기억저편 희미해진 추억의 단상들도, 전설처럼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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