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가야산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

2018.03.08(목) 12:11:45 | 찌삐소녀 (이메일주소:tpfpsk1379@naver.com
               	tpfpsk137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1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 5-28에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의 무덤이 있습니다. 높은 언덕에 반구형의 봉분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석물과 비석이 서 있습니다. 원래 경기도 연천 남송 정에 있던 무덤을 1846년에 이곳으로 옮겼는데요.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남연군의 무덤 자리를 찾기 위해 정 만인에게 부탁하여 지금의 자리를 점지하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큰절이 있었고 묫자리에는 탑이 있었는데요. 대원군은 절을 없애고 이곳에 아버지 묘를 옮겼습니다. 묘를 옮긴 후 7년 만에 차남 명복을 낳았는데요. 철종 임금의 후사가 없어 종순인 명복이 12세의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라 고종이 되셨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2

1868년 독일 상인 옴페르트가 배를 타고 내포로 들어와 새벽에 이 무덤을 몰래 파헤쳤으나 풍수지리학자의 도굴 염려에 대한 에언으로 쇳물을 녹여 덮어 놓는 바람에 관은 훼손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흥선대흥군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였고 천주교인들을 박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서양과의 통상교역을 금지하는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3

남연군묘 본봉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돌로 층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풍수지리학자 정만인의 예언으로 흥선대흥군의 아들 고종과 순종 2명의 왕이 올랐으나 두 분 다 비운의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4

남연군묘는 충남도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종의 할아버지 남연군은 후사가 없었던 정조의 아들 은신군의 양자였습니다. 세도정치로 왕족들의 힘이 약화한 시기에 남연군의 아들이었던 흥선 대흥군은 강왕권을 강화시켜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선 자신의 집안에서 왕이 나오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지관인 정만인에게 부탁하여 전국의 명당자리를 찾던 중에 두 군대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한 곳은 두 명의 천자가 나올자리고 다른 한 곳은 자손대대로 영화를 누릴수 있는 자리라고 했는데요. 흥선대원군은 천자가 나올 자리인 가야산인 있는 현재의 이 곳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도 연천에 있는 아버지 남연군 묘를 교통이 불편했던 시대에 이장하면서 릴레이 순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상여를 메고 운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여를 메준 가야산 남연들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상여를 기증했는데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5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서 있는 비문과 무덤앞에 서면 새로운 역사 의식이 생겨납니다.
가끔 시간을 내어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되돌아 보는 일도 역사를 연구하게 되고 새로운 역사관이 정립되는것 같습니다.

가야산흥선대원군아버지남연군묘 6

 
 

 

찌삐소녀님의 다른 기사 보기

[찌삐소녀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