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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임진왜란 승병장 기허당 영규대사 묘를 찾아서

2018.01.20(토) 21:40:34 | 수운 (이메일주소:hayang27@hanmail.net
               	hayang2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기허당 영규대사의 묘소
▲ 기허당 영규대사의 묘소


한겨울의 짧은 햇살이 눈이 희끗희끗 쌓인 무덤 위를 옅게 비추고 있습니다. 뒤로 솔숲이 병풍처럼 펼쳐진 이곳은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승병장 기허당 영규대사가 잠들어 계신 곳. 계룡산 아래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입니다. 영규대사 묘소 뒤로는 낮은 언덕에 석상이 서 있어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데요. 뒤로는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너른 들판 너머 계룡산을 바라보는 좋은 곳입니다.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버들미 마을
▲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버들미 마을


논산에서 공주로 가는 지방도에는 밤색 표지판이 여럿 서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유적지를 나타내는 밤색 표지판을 보면 괜히 마음이 설레곤 하는데요. 어떤 유적지가 있을지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곳은 논산에서 공주를 거쳐 천안이나 세종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계룡산을 끼고 돌아가는 공주시 계룡면입니다. 길이 시원스럽게 뚫려 시골길로는 잘 다닐 일도 없는데요. 이 길엔 계룡산 신원사며 갑사 등 공주시의 다양한 유적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2018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공주시를 구석구석 다녀봐야겠어요.


농촌 체험마을 계룡뜰 자전거마을
▲ 농촌 체험마을 계룡뜰 자전거마을


공주시 계룡면 유평1리 버들미마을은 농촌체험마을인데요. 계룡뜰 자전거마을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아마 자전거를 많이 타는 마을인가 봅니다. 보통 시골 마을처럼 비닐하우스가 나란히 있고, 산 속으로 마을이 포근하게 들어앉아 있네요. 



유평리 버들미마을 진입로
▲ 유평리 버들미마을 진입로



마을 가운데 동산
▲ 마을 가운데 동산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들어가니 마을 입구에 작은 동산이 하나 있는데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느티나무 꼭대기에는 까치집이 소쇄하게 자리하고 있는데요. 파란 겨울 하늘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겨울 이맘때를 제외하고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장소로 보입니다. 실제 동산 가운데에 서 있으면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홍살문과 영규대사 영정각
▲ 홍살문과 영규대사 영정각



홍살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계룡산
▲ 홍살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계룡산



붉은색 홍살문과 작은 사당 하나가 보이는데요. 이곳은 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각입니다.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했는데요. 아마도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겠죠?
홍살문 너머로 들판과 들판 너머 계룡산이 가물가물하게 보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계룡산 정상까지도 선명하게 보이지만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가 막히는 아쉬움이 있네요.



기허당 영규대사 실적비
▲ 기허당 영규대사 실적비



영정각을 지나 묘소로 향하는 100여미터의 길 오른쪽 들판에 실적비가 서 있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영규대사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허당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격적 끝에 순국했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했고, 계룡산 갑사에 출가하여 휴정 대사의 제자로 공주 청련암에서 수도했고, 무예를 익혔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8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를 수복했는데 이 승리는 임진왜란 첫 승리였다고 합니다. 이후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공격하기 위해 금산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격전 끝에 700 의사와 함께 안타깝게 순국했다고 전해집니다. 
조국이 풍전등화에 이르렀을 때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장렬히 떨쳐 일어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의기야말로 진정한 애국심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영규대사 묘 안내 표지판
▲ 영규대사 묘 안내 표지판



영규대사 묘
▲ 영규대사 묘



작은 언덕 비탈을 오르면 드디어 영규대사의 묘소가 보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격에 떨어지지도 않는 크기라고 하겠는데요. 작년에 여름 사진으로 봤을 때는 잡초가 무성해서 황폐해 보였지만 겨울에 깔끔한 묘소를 보니 잘 관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영규대사 묘 비석들
▲ 영규대사 묘 비석들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비석이 보이는데요. 가운데 비석은 처음 세웠던 아주 오래된 것이고, 오른쪽 작은 비석은 '영규대사묘'라고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왼쪽의 검은색 비석은 새롭게 묘지를 조성하면서 세운 비석입니다. 



영규대사 묘
▲ 영규대사 묘



위에서 내려다 본 묘소 건너편에는 작은 집이 몇 채 보입니다. 오른쪽으로는 계룡산 자락이 가물가물 보입니다. 산 속 적당히 높은 곳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멀리 수도하던 계룡산을 건너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 있는 표충서원에서는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당 등 3대사의 충렬을 기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승병장으로서 전란에 참가한 충절은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묘소
▲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묘소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묘소
▲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묘소



영규대사 묘 위로 소나무 숲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묘소가 있습니다. 향토유적 1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윤원거는 기호유학의 거두인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많은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학문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6-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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