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 (38) 제사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7.04.06(목) 23:06:54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천명38제사 1


천명38제사 2
“맞습니다. 조선의 제도와 풍습을 해치는 일은 곧 조선의 위기로 몰아갈 것입니다.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집의(執義) 정호가 절대불가를 외치며 나서자 전한(典翰) 이익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나친 비약이십니다. 어찌 그런 일로까지 몰아가십니까? 저들이 서양귀신을 믿는다 하나 그건 말 그대로 믿음일 따름입니다. 어찌 조선을 위기로 몰아넣겠습니까? 더구나 저들의 발달된 기술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들입니다.”
성호 이익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내세워 권철신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유량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믿음이 곧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요, 개인의 행동이 변화하는 것은 곧 사회가 바뀌는 초석임을 모르신단 말이오. 그까짓 작은 것을 얻기 위해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변화시켜 위기로 내모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외다.”
정유량의 반박에 권철신이 다시 나섰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곧 머무는 것이오, 머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좋은 변화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호가 나섰다.

“조상을 모시지도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어찌 좋은 변화라 하십니까? 그것이 좋은 변화라면 그야말로 하늘이 노하고 땅이 곡을 할 것입니다.”
정호는 말끝에 혀까지 차댔다. 영조의 고개도 끄덕여졌다. 권철신이 나서 다시 반박을 하려할 때였다. 

“전하, 형판 홍치중입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무슨 일인가?” 이어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전라도 진산의 윤지충과 권상연이라는 자가 제 조상의 신위를 불태우고 제사도 폐했다 합니다.”

“뭐라? 신위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해?”
“그렇습니다. 어찌 이토록 불충불효한 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형조판서 홍치중의 말에 정유량과 정호의 얼굴이 펴졌다. 반면 이익과 권철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하, 보십시오. 그예 이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당장 그 자를 잡아들여 풍습을 해친 죄를 엄히 물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사직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영조의 얼굴도 굳어졌다.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성호 이익과 녹암(鹿庵) 권철신의 말을 들을 때만해도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아니었다. 국가의 기강을 흔들만한 중차대한 일이었다. 어쩌면 사상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자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 자들을 당장 잡아들여라!”
영조의 노기가 서슬이 퍼랬다. 정유량과 정호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반면 이익과 권철신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의금부에 압송되어 영조의 친국을 받았다.

“어찌하여 그 같은 짓을 일삼았느냐?” 영조의 물음에 윤지충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신위라는 것이 저에게 살과 피를 나누어준 것도 아닌데 어찌 그것을 조상 대하듯 받들어 모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저 나무 조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윤지충의 대답에 영조를 비롯해 형조판서 홍치중 등은 충격에 휩싸였다.

“저, 저런 무도한 놈이 있는가?”
금부도사 김도언은 삿대질까지 해대며 윤지충을 나무랐다. 그러자 곁에 있던 권상연도 입을 열었다.

“제사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음식을 장만하고 정성을 다한다 한들 돌아가신 조상님이 와서 드시고 가는 것도 아닌데 어찌 그러한 일에 산자들이 고통을 당해야 하겠습니까?”
“고통이라니? 조상을 모시는 일을 두고 어찌 고통이라고 말한단 말이더냐? 이 천하에 몹쓸 놈!”
형조판서 홍치중이 수염까지 부르르 떨어가며 호통을 쳐댔다. 그러자 권상연의 삐뚜름한 대꾸가 계속 이어졌다.

“사대부가 양반님 네야 조상을 모시는 일이겠지만 하루 세끼 연명하기도 힘겨운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조상을 모시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자식을 팔아가며 위한다 한들 그것이 산자들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연재기사]
[도정신문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