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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424년전 5월 29일을 잊지 말자…

거북선 첫 실전 투입돼 왜군을 격파한 날

2016.05.29(일) 23:27:29 | 윤석천 (이메일주소:dj3637dh2927@hanmail.net
               	dj3637dh2927@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이 5월 29일. 그저 평범한 음력 5월의 끝자락이다.
하지만 시계를 424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오늘이 보통 날이 아님을 알수 있다.
1592년(선조 25년) 5월 29일 바로 오늘, 경상남도 사천 앞바다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출전시켜 왜군을 수장시킨 날이다.

대입시 공부를 하던 고교시절, 국사 선생님이 입이 닳도록 외우라고 가르쳐 주신 생생한 날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사용한 해전은?”
“사천 전투”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사용해서 해전을 치른 날은?”
“1592년(선조 25년) 5월 29일”

사실 이 날은 음력의 기록이다. 하지만 현대사를 기술함에 있어 음력과 양력 환산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당시의 음력일을 오늘날의 양력으로 기록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된다.
 
현충사 경내
▲ 현충사 경내

그래서 어제 충무공의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의 전황을 다시금 공부하며 나라사랑의 진정한 뜻을 새겨보고자 현충사에 다녀왔는데...
 
그런 어제는 또 일본이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도발을 했다.
지금 한국, 미국, 일본 등 6개 나라 해군이 참가해 남해에서 열리고 있는 ‘2016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훈련’이 열리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 해군이 독도함을 투입시키자 일본이 그걸 트집잡아 훈련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잖아도 며칠전 일본 자위대 해상자위대 군함이 우리나라에 입항할때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旭日旗)를 달고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와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한 일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도함을 트집 잡아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을 보며 이번 5월 29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처음 전투에 투입해 수많은 왜군을 수장시킨 것을 상기해 보니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사천전투에 관한 기사는 필자가 현충사에서 촬영한 전투관련 사진을 토대로 하였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현충사 사료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리고 한국어 위키백과사전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해 보았다.
 
현충사 전시관에 있는 충무공의 전적지 지도. 주요 전투지에 관한 지역이 표시돼 있다.
▲ 현충사 전시관에 있는 충무공의 전적지 지도.

주요 전투지에 관한 지역이 표시돼 있다. 그중 가운데 검은 동그라미로 표시한 부분이 사천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거북선을 최초로 사용한 사천전투 위치도
▲ 거북선을 최초로 사용한 사천전투 위치도

충무공 함대의 주력 전투선이자 사천전투에서 최초로 실전 투입된 거북선
▲ 충무공 함대의 주력 전투선이자 사천전투에서 최초로 실전 투입된 거북선

거북선 옆면도
▲ 거북선 옆면도

거북선 단면도
▲ 거북선 내부 단면도

거북선과 판옥선(왼쪽 2척), 그리고 왜군의 전투선이었던
▲ 거북선과 판옥선(왼쪽 2척), 그리고 왜군의 전투선이었던 아다케부네와 세키부네(오른쪽 2척)

충무공이 5월 29일 거북선을 최초로 투입해 전투를 시작한 것은 크게 사천전투라 부르고 그 424년전 오늘부터 6월 1일까지 조선 수군은 왜군함선 13척을 격침시켰다.
이때 수장된 왜군의 숫자는 자그만치 2600여명이라 한다.
 
이 전투는 이순신 함대가 두 번째로 출전해 치른 해전이다. 함대 규모는 충무공이 이끄는 전라좌수영의 정예함선 23척과 원균이 이끄는 경상우수영의 함대 3척 등 총 26척이다.
이때 이순신 함대에 새로 투입된 전함 거북선이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 수군은 이전에 치러진 조선 수군과의 해전에서 큰 타격을 받았음에도 서해안으로 진출하기 위해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충무공 함대는 이러한 일본 수군을 공격하기 위해 5월 29일 노량으로 나가 사천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영수군과 합류했다.
이어 해안선을 따라 사천 선창으로 도망치는 왜군 척후선 1척을 격침시킨 뒤, 계속 나아가 사천 포구에 이르렀다.
 
선창에는 왜군 대선 12척이 매어 있고, 선창 뒷산에는 왜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순신 함대가 접근하자 왜군은 완강히 저항하며 맞섰다. 마침 썰물 때라 전선을 포구에 댈 수 없어 아군 함대는 작전상 후퇴하며 적군 일부를 먼 바다로 유인하였다.
이때 아군 함선을 추격해 따라온 왜선이 아군의 대형 전함인 판옥선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해역까지 따라오자, 이순신 함대는 갑자기 뱃머리를 돌려 다시 왜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최전방 돌격선의 임무는 거북선이 맡았다. 충무공은 아군 주력선인 판옥선보다 먼저 거북선을 적진에 들여보내 천자, 지자, 현자, 황자총통과 각종 함재 화포를 집중적으로 발사하였다.
 
이때 아군이 사용한 무기는 현재 현충사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1


먼저 비격진천뢰다.
화포장(火砲匠) 이장손이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임진왜란 때 큰 효력을 발휘했다.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철 조각을 넣어 목표물에 발사하는 인마살상용 폭탄의 일종이다. 대완구로 쏘았고 능히 400보까지 날아가고 땅에 떨어지면 얼마 후 폭발하는 요즘의 수류탄 같은 것이었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2


승자총통.
경상병사 김지가 개발하여 여진족 나탕개의 난을 토벌할때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는 조선 수군의 중요한 무기였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3


황자총통.
천자, 지자, 현자 총통과 같은 종류인데, 그중 황자총통이 가장 소형으로 주조되어 이동하기 편리했으며 그 형태도 다양했다. 태종 때 중국 화포제도를 따라 군기감에서 처음 제조되었는데, 세종 때 크게 개량되었다. 화살을 편리하게 쏘거나 탄환의 사정거리를 늘리는 데 필요한 고하의 조정을 위해, 또 포를 포가나 뱃전에 설치하여 방포 태세를 갖추기 위해 부분장치를 했다고 한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4


현자총통.
천자와 지자총통 다음으로 큰 화포이며 임진왜란때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다.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보다 크기가 작아 만들기 쉽고 화약도 적게 드나 탄알 등이 발사되어 도달할수 있는 거리나 성능은 비슷하여 많이 제작했다고 한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5


천자총통.
임진왜란때 사용하던 화포중 가장 큰 것이다. 무게가 약 420kg이나 되며 화약을 30냥 넣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 대포에서 날아간 쇳덩이 탄환이 왜국 함선을 박살 냈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다 후련해진다.
 

왜군의 조총을 살펴보는 관람객.

▲ 왜군의 조총을 살펴보는 관람객.


조선 수군의 이런 파상공세에 놀란 왜군 함대는 지리멸렬해 사천포구 쪽으로 도주하였고, 그러는 사이에 만조가 되었다.
 
거북선에 이어 밀물을 따라 포구에 도착한 판옥선에서도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하자, 왜군은 배를 버리고 산 위로 도주하기에 바빴다.
이 와중에 수많은 왜군이 죽고, 포구에 있던 왜선 가운데 10척이 아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나머지 2척은 패잔병들이 타고 도망갈 때 소탕하기 위해 일부러 태우지 않고 남겨 둔 채 함대를 사천만 입구의 모자랑포로 옮겨 그 곳에서 밤을 지냈다.
 
나머지 2척을 타고 도주하려던 왜군 패잔병은 원균에 의해 6월 1일 새벽 배와 함께 불에 타 죽거나 목이 베어졌다. 이 해전에서 왜군 2,600명이 도살되었고, 13척의 왜선도 모두 격침되었다. 아군 측은 거북선 건조의 책임자이자 군관인 나대용이 적의 총탄에 맞았고, 이순신도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다.
 
사천해전은 이순신이 치른 다른 해전과 마찬가지로 지형과 조수를 이용한 전략 외에 거북선을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해 그 성능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무척 크다.
각종 함포로 무장한 최전방 돌격선으로서 적선 격침은 물론, 적진을 혼란에 빠뜨리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이후 거북선은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각종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상징하는 전선으로 위용을 떨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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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충무공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두장의 거북선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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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그림 중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424년전5월29일을잊지말자 8


충무공의 장검.
칼날에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과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라고 새겨져 있다.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뜻이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장군의 위엄과 기개가 엿보인다.
 
거북선이 최초로 해전에 참가한 이 사천 전투의 결과 왜군은 충무공 함대의 위력에 기가 죽고 결국 부산과 거제도로 도피하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선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이순신에게는 정2품인 정헌대부의 벼슬을 하사하였고,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인 가선대부로 승진하였다.
 
육지와 바다로 병진해 조선땅을 단숨에 집어 삼키려 했던 왜군이 충무공의 함대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그나마 강토를 지킬수 있었다.

그 한가운데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거북선.
우린 늘 충무공의 전투적 지략과 용기, 위엄, 애국심, 리더쉽을 배우며 호국의 의미를 거듭 되새겨 보자. 그리고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선조들의 애국투혼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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