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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겨울향기가 매력적인 추사고택

2016.02.02(화) 11:00:29 | 지민이의 식객 (이메일주소:chdspeed@daum.net
               	chdspeed@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명필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재주를 가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예산에서 위세 있는 가문으로 자리했다. 추사의 흔적은 예산에도 있지만 유배를 갔던 제주도에도 있다.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승승장구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던 그가 자신만의 추사체를 완성한 것은 유배지에서 였다. 사람은 고난과 고독을 이겨내야 비로서 완성이 되는 모양이다. 
 

추사 김정희 고택의 솟을 대문

▲ 추사 김정희 고택의 솟을 대문


예산에 자리한 추사고택은 증조부인 김한신이 부마가 되면서 주면 마을이나 관청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아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서울에도 저택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인물로 서예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불교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으며 금석학자, 실학자, 화가로서도 활동했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로 갔을때 청나라의 유력 인물이었던 완원과 옹방강과의 만남은 그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완원은 청조의 업무를 주관하고 서방무역을 관장한 인물이며 옹방강은 중국 청대의 서예가로 예서에도 뛰어났으며 시와 문장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두가지 큰일이 있다.

▲ 세상에는 두가지 큰일이 있다.

 

"세상에서 두 가지 큰 일은 밭갈고 독서하는 일이다."라는 문구가 문득 마음속에 들어왔다. 

김정희에게 두 가지 일의 공통점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끊임없이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독서를 하는 것은 조금더 귀한일이고 밭갈기는 천한일이 아닌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시했었는데 제주도로 유배갔을 때에 제자가 책을 구해주고 진심을 다한 것에 이런 말을 남긴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았네" 잘나갈 때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면한다. 즉 힘든 시기가 되어봐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는 진리가 담겨져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

▲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


추사의 글을 보면 세련된 가운데 기세가 느껴진다. 글씨의 두께의 강약의 변화를 통해 역동적이지만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어낸다. 5,000권을 읽어야 비로서 붓을 들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지금 후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그 역경을 끝까지 긍정적으로 승화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탓을 하며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13년에 가까운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 시기에 자신의 학문의 깊이를 만들고 수양했으며 결국 추사체라는 자신의 역작을 만들어 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언제부터 대를 이어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가재도구 하나가 대청마루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래된 것보다 새것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살지만 우리 선조들은 오래된 물건이나 대를 이어내려오는 가재도구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여러 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손때가 묻은 그런 물건에는 정감이 담겨져 있다.
 

들어와서 차나 한잔 마시게나

▲ 들어와서 차나 한잔 마시게나


증조부인 김한신은 이 고택에서 지역의 선비들과 차를 한 잔 마시며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을 것이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이 공간은 추사 김정희에게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시간만 있으면 내려와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한다.
 

2016년의 사색

▲ 2016년의 사색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강추위에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몸을 움직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나 생각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좋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그 삶은 점의 연속이고 점이 이어지면 삶의 선으로 완성이 된다. 오늘 점을 찍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어졌던 선은 끊어지는 법이다. 
 

나무와 함께해온 인생

▲ 나무와 함께해온 인생


추사 김정희는 유독 나무들을 사랑했던 것 같다. 소나무, 잣나무, 대나무, 매화나무까지 사랑했고 감상하기를 즐겨했다. 단순히 한겨울에도 푸르르고 꽃을 피우기까지 해서 좋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한결같은 그 모습이 좋았던 것이다.
 

눈이 내려앉은 지붕

▲ 눈이 내려앉은 지붕


대부분 아파트에 몰려사는 현대인들은 지붕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한옥은 조금만 지대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렇게 기와가 얹어진 지붕을 볼 수 있다. 눈이오면 흰색으로 채색된 지붕을 볼 수 있고 비가 오면 그 색채가 더욱 선명해진 지붕을 볼 수 있다. 추사고택의 지붕은 추녀를 살짝 올린 팔작지붕과 평평한 맞배지붕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붕의 선

▲ 지붕의 선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중에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백혜백, 강사공, 이시형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비록 적지 않은 시간을 유배로 떠돌기는 했지만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사상가였고 실학자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서예가로만 국한하기에는 너무나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다. 

추사고택은 충남 예산군 추사 고택로 261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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