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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끝) 미륵보살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12.07(월) 15:58:0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미소끝미륵보살 1

미소끝미륵보살 2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단은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는 자리를 일어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놓았다. 보원사로 향했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잊어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것만이 네 앞에 놓인 현실이야.”
의현대사는 모든 것을 초탈한 얼굴로 단을 위로했다. 그러나 단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석탑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백제라는 껍데기를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름이라는 껍데기, 의식이라는 껍데기, 제도라는 껍데기 모두 허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그러나 의현대사의 그런 말이 단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석탑 기단부의 팔부중상에 눈을 꽂은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대사님, 불암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한 가지 소원이 꼭 성취된다고 했지요?”
뜬금없는 물음에 의현대사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것도 껍데기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껍데기 같은 전설일 뿐이야.”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저는 껍데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희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전부이니까요.”
단의 넋 나간 말에 의현대사는 또 다시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런 껍데기들이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의지가 되고 의욕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은 고개를 돌려 의현대사를 바라보았다. 의현대사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감돌았다.

“저 팔부중상이 천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부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듯이 저도 부처님의 그림자를 영원히 드러나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자 합니다.”
단의 말에 의현대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합장을 올려댔다.

“전쟁의 참혹함이 나로 하여금 크게 깨닫게 하더니 네가 또 나를 울리는구나.”
의현대사의 미소가 슬픈 듯 기쁘게 맴돌았다.
그날 이후로 불암에서 바위 쪼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의 모습을 영원한 그림자로 드러내리라.’
단은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불암에 연의 모습을 조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가 지고 달이 가고 또 해가 바뀌어도 단의 돌 쪼는 일은 멈춤이 없었다. 그리고 계절은 또 다시 쓸쓸한 낙엽이 지는 가을을 보내고 매서운 바람이 눈보라를 휘날려대는 겨울을 불러왔다. 그러나 단의 돌 쪼는 소리는 여전히 멈출 줄을 몰랐다. 손이 터지고 발이 얼어붙어도 불암을 떠나지 않은 채 연의 형상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을 은빛으로 바꾸어놓는 소담스런 눈이 내리던 날, 단은 무연히 자신의 조각을 올려다보았다. 연의 자애로운 미소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은 그 미소에 순간 전율했다. 그리고 보았다. 세상을 구원할 미소를 그리고 백제를 구원할 미소를, 사랑을 구원할 미소를 보았던 것이다. 지독히도 슬픈 미소 속에 감추어진 환한 미소가 단의 가슴을 울렸다.

단은 정을 들고 다시 돌을 쪼기 시작했다. 연의 옆으로 자신의 모습을 크게 더하고 그리고 또 그 옆으로 미래에 있을 자신과 연의 사랑을 아로 새겼다. 귀여운 모습에 단은 흡족해했다.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그리고 미륵보살이시로구나.”
어느새 올라왔는지 의현대사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단의 뒤에 서 있었다. 단은 의현대사가 올라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단은 그저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대사님, 죄송합니다. 이것은 석가모니불도 제화갈라보살도 미륵보살도 아니십니다. 그건  그저 연과 저의 미소이자 사랑일 뿐입니다.’
단은 속으로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 부처님의 미소가 너와 연을 닮았구나.”
의현대사는 합장을 하며 단을 돌아보았다. 단은 여전히 미소만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이 처연하게 아름다운 겨울날이었다.

삼존불은 단의 사랑을 형상화한 부처바위의 그림자로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삼존불을 찾아 사랑을 구원하기 시작했고 넓게는 세상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연인에 대한 사랑을 구하기 시작했다.

단은 연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의현대사를 스승으로 삼아 출가했다. 그의 사랑은 불가에 이어져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한 뿌리가 되었다.

단의 의발(衣鉢)을 이어받은 도의(道義)는 당에 건너가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제자인 서당 지장(西堂 智藏)에게 선법(禪法)을 이어받아 돌아왔다. 그리고는 진전사(陳田寺)에 머물다 제자인 염거(廉居)에게 의발을 물려주었다. 염거는 다시 체징(體澄)에게 의발을 전수하였고 체징은 가지산(迦智山)에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하여 일대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며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가지산문을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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