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송리 기념비를 보며 생각한 일본의 역사왜곡
2015.04.10(금) 19:54:38 | 지민이의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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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images/cnportal/bbs_info.gif)
공주 장기면 석송리를 가다보면 석송리 3.1운동 기념비를 만날 수 있다. 마을사람들을 제외하고 외지인들은 그곳에 기념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정도로 구석에 위치해 있다.
최근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롯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일부 교과서에 실어 외교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과거 일본이 가야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을 둬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설로, 지난 2003년부터 한일 양국 정부 합의로 진행된 역사 공동연구에서 일본 학자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독립만세기념비 안내판](/export/media/article_image/20150410/IM0000771579.JPG)
▲ 독립만세기념비 안내판
빛바랜 독립만세기념비만이 이곳에 3.1운동 독립운동을 기록한 기념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기미년 삼일절 당시 공주에서는 영명학교 교장 윌리엄 선교사와 권석철목사의 후원아래 남녀학생 및 시민 수백 여 명이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학생 중에는 유관순 열사의 사촌오빠인 유구석 등 수명이 주도적으로 석송리에서 만세운동을 벌여 25명이 일본경찰과 헌병에 구금, 박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3.1운동 기념비가 자리하게 된 배경이다.
![석송리기념비가 위치한 곳](/export/media/article_image/20150410/IM0000771580.JPG)
▲ 석송리기념비가 위치한 곳
저 멀리보이는 집 뒤로 3.1운동 기념비가 있다고 이곳 소방대원이 알려주었다. 만약 알려주지 않았다면 못찾았을듯 하다.
![기념비에 대한 안내](/export/media/article_image/20150410/IM0000771581.JPG)
▲ 기념비에 대한 안내
이곳에 기념비가 없다면 석송만세운동기념비가 있는지도 몰랐을 듯 하다.
3.1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본이 역사왜곡을 시도한 것을 보면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4월 6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지리·공민교과서 18종 모두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기술하고, 역사교과서 8종 중 4종에서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뜻하거나 암시하는 표현이 서술되고 있다.
![태극기가 알려주는 기념비](/export/media/article_image/20150410/IM0000771582.JPG)
▲ 태극기가 알려주는 기념비
목천에 위치한 아우네 장터의 3.1운동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이곳은 사업회 관계자나 마을사람들 빼고 외지인들은 안내판등이 부족해서 찾기가 어렵다.
![삼일독립만세사적비](/export/media/article_image/20150410/IM0000771583.JPG)
▲ 삼일독립만세사적비
1919년 4월 1일 이곳 장기면 석송리뿐만이 아니라 운궁리, 유구, 여러 지역에서 봉화가 오르는 등 산상시위가 전개되었다.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알수록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