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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연은 아니지만 무대는 내 세상

[예산밖 예산사람] 연극청년 신현용씨

2015.01.06(화) 09:20:42 | 무한정보신문 (이메일주소:jsa7@yesm.kr
               	jsa7@yesm.kr)

어릴적 꿈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꿈을 가지라’고 주문하던 기성세대들은 학교 졸업과 동시에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낙오자로 분류한다. 스물이 넘고, 서른이 넘어서까지 ‘꿈’을 찾겠다는 이들은 ‘철이 없’거나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성적경쟁, 스펙경쟁, 입시경쟁, 입대경쟁, 취업경쟁, 승진경쟁… 끝도 없는 경쟁의 시대, ‘이기는 삶’을 위해 한 길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은 정말 패배자일까?

새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새 자세로 살아가는 새해다. 작심삼일 만에 깨진다는 더 건강하게, 더 열심히, 더 잘, 더, 더, 더… 라는 결심보다 잊고 있던 나의 꿈, 내 자녀의 꿈, 내 이웃의 꿈, 우리 사회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더, 더, 더’를 외칠 때보다 시야가 훨씬 넓어지고, 행복한 삶이 가까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올해 월1회로 진행하게 될 출향인 인터뷰, 첫 ‘예산밖 예산사람’으로 신현용(30)씨를 만났다. 고향에 펼침막이 내걸릴 정도의, 소위 출세와는 거리가 있지만, 꿈을 향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열정적으로 오늘을 사는 그의 이야기가 <무한정보> 새해특집 네 번째 선물이다. <편집자>

연극을 해서일까. 어떻게 찍어도 표정이 잘 산다. 현용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를 찾았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현용씨가 첫 공연을 했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이다. ⓒ 무한정보신문

▲ 연극을 해서일까. 어떻게 찍어도 표정이 잘 산다. 현용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를 찾았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현용씨가 첫 공연을 했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이다. ⓒ 무한정보신문


“기자님, 기억하세요? 저 고등학교 때 인터뷰하셨는데…”

지난 가을, 추사휘호대회 행사장(예산군)에서 한 청년이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건넸다. 기억 저편을 헤매고 있는데, 당시 인터뷰 주제를 되살려 주는 배려까지…. ‘뉘집 아들인지 참 잘키웠다’는 생각만 들 뿐, 여전히 기억은 깜깜. “그 때 말씀드린대로 제가 지금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선배가 예산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같이 왔어요” 주변이 환해지도록 밝게 웃는 얼굴, 기분 좋은 목소리, 그제서야 11년 전 한 남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배우가 되고 싶어 일요일마다 서울로 연기를 배우러 다닌다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한 삶 아니냐”며 부모님을 설득했다던, “나중에 좋은 배우가 되면 고향신문 기자로 또 인터뷰 하러 오라”던 삽교고 2학년생.

그때 약속대로 인터뷰를 하자고 청하니 “아직 좋은 배우가 되지 못했고, 지금도 공부하는 중이고, 한참 멀었다”고 난감해 한다.

그저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새해 아니냐는 거듭된 요청에 어렵게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 11년 후
 
ⓒ 무한정보신문

▲ ⓒ 무한정보신문


현용씨를 다시 만난 건 12월 20일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앞이다.

어릴적 꿈의 무대였던 대학로는 그가 20대를 온전히 바친 삶터이고, 학교이고, 현재이고, 또한 미래다. 2005년 대학 1학년 재학 중에 첫 무대에 선 뒤, 지금까지 10년 동안 대학로에서 먹고, 자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스태프로 살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 대학로는 젊은이들로 넘쳤지만, 그는 “한 번도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지낸 적이 없다”고 한다. 공연은 연말이 가장 성수기이고,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가 극성수기이기 때문이라는데, 아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극판에서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 한데요”

선배들이 평가하는 배우 신현용의 장점은 ‘기분좋게 못생겼다’ ‘매력적으로 못생겼다’는 것이라고 한다. 설마….

현용씨는 현재 유명극단인 <차이무>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단원이라기 보다 공부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늘 연기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스태프로 무대를 만들기도, 다시 해체하는 일도, 공연 전 무대인사 멘트나 홍보활동을 하기도 한다. 개런티 없이 스스로 후원 모집부터 공연장 섭외, 홍보 등 모든 준비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워크숍공연은 연극청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공부고, 경험이다. 특히 스태프을 해보면 뭐가 감사한지 알게 되고, 무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는 ‘택배왔어요’ ‘보고싶습니다’ ‘투룸쇼’ ‘고스트’ ‘오! 브라더스’ ‘마르고 닳도록’ 같은 유명연극들에도 출연했다. 주연은 아니지만,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게 대단한 일 아니냐는 말에 그가 손사래를 친다.

“제가 역량 대비 작품편수가 많은 편인데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예요. 저보다 훨씬 준비돼 있고 좋은 배우들이 있는데 어쩌다보니 제게 기회가 왔던 거죠”

아무려면 그렇게 많은 지망생들 중에 단역이든, 조조연이든 뽑는데 실력없는 사람을 선택하겠는가.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 너무 못했다”고 거듭 강조한다.

“스물세살 때 했던 ‘보고싶습니다’가 제겐 참 의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여주인공 동생역이었는데 엄청 혼나면서 꾸역꾸역 해냈죠. 최근에 한 ‘마르고 닳도록’의 퇴역대령 역할도 정말 못했어요”

어디까지가 겸손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공연 일정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유명배우들이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와 배고팠던 무명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 이들의 말은 특별히 마음 아프지도,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는 추억담일 뿐이어서 그저 가십거리로 소모되고 만다. 사람들에게 현재 배고프고 불안한 현장의 배우, 혹은 배우 지망생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일 뿐이다.

현용씨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어느 해 겨울이었는데 집에 들어가니까 전기도 가스도 끊겼더라구요. 주머니에 남은 8000원으로 찜질방에서 잠을 잤는데, 휴대전화를 누가 가져간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연습에 늦어 혼났는데도 변명 같아서 얘길 안했죠. 나중에 알고는 선배들도 다 겪어본 일인데 상의하지 않았다고 또 혼내시더라구요. 하하”

그는 그래도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고 큰소리 쳤으니 저 자신에게 떳떳해야죠”

고정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배우가 돼 가는 것 같지도 않고, 불안정한 시간이 계속되자 고교시절 그의 강력한 지원자였던 아버지까지 취업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2012년 그가 두 달동안 연극판을 떠나있었던 이유다. 무엇보다 불효를 너무 오래한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근무조건이 괜찮은 일이었지만, 그를 길게 묶어 두지는 못했다. 선배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고는 미련 없이 대학로로 돌아왔다. 연극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이고 그가 갈 길이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현용씨는 지난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동갑나기 연극청년(그는 배우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며, 굳이 그렇게 불렀다) 이은정씨다.

두 사람은 공연 막내스태프로 포스터를 함께 붙이고 한달동안 조명과 음향을 각각 맡아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다가 “정과 의리가 쌓였다”고 한다.

“저는 스태프를 하면서도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는 똑같은 공연을 수도 없이 보면서 매회 울고 웃는 거예요. 폼 나지 않는 일에도 성실하고 정성을 다하는데 경외심이 들더군요. 제 아내야 말로 참 연극청년이예요. 그 뒤로 저는 배우로, 그 친구는 스태프로 다시 작업을 함께 했는데,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게 더 넓은 눈을 찾아준 친구예요”

아내보다 친구라는 표현이 더 입에 붙는 연극동지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든든할까?

현용씨는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늘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다가 “사실은 요즘 생각이 많다. 불면증도 생겼다”고 고백한다.

가난할 지언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삶이고, 또 아르바이트가 됐든, 공연 개런티가 됐든 굶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들어오는 신기한 현실에 용기를 내던 그에게 올해 아빠가 된다는 아주 기쁘지만 무거운 짐이 생긴 것.

“나는 가난해도 살 수 있지만, 내가 먹여살려야 하는 자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불확실한 연극배우의 미래가 올해 서른이 되는 가장에게 속삭인다.

“너 정말 계속 할 수 있어?”

 
10년 뒤에도 이 자리에

그의 꿈은 “10년 뒤에도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나와야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유명세에 대한 조급증이 없어 보인다.

“제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유명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유명해질 만큼 잘하면 유명해지겠죠. 감히, 즐기고 신나게 하다보면 그릇이 다 차게 될 테고 알아서 잘 될 것이라고 믿어요”

말에서 강한 의지가 읽힌다. 그냥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보겠다는.

현용씨는 불면증에 시달릴 지언정 ‘아이 때문에’ 지레 자신의 꿈을 접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힘든 세상에서 연극을 계속하고 있고, 이은정하고도 결혼한 나는 행운아”라면서 “울림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려는데 문득 그가 말한다.

“서울로 올라온 뒤 예산서 명절 지낸 적이 거의 없지만, 저는 뼛속까지 예산사람입니다. 부모님께는 다른 자식보다 몇배는 더 속썩여 드렸는데, 새해에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김동준 선생님! 고등학교 때 연극반 사비 들여서까지 도와주시고, 제 공연 때도 보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청년, 10년 뒤 마흔 되는 해에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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