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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여성·다문화 등 사회복지 관련 정책 개발 분주

출향인 탐방 - 안정선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장

2014.12.02(화) 11:50:53 | 관리자 (이메일주소:ladysk@hanmail.net
               	ladysk@hanmail.net)

여성다문화등사회복지관련정책개발분주 1

오늘 만나볼 청양출신 출향인은 안정선(59)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장이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1999년 설립된 지방출연 연구기관으로써, 여성과 사회복지 및 다문화 관련 정책개발 및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정선 원장을 소개한다.

전문 간호인 양성 어느덧 33년
안 원장은 화성면 매산리에서 2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69년 청양초 졸업 후 대전으로 유학을 떠나 대전여중과 여고를 졸업했으며, 이어 부산대학 간호학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와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박사를 취득했다.

또 석사 취득 후 제주 간호전문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82년도부터는 공주대학교로 옮겨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해 오고 있다. 현재는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안 원장은 그동안 참 바쁘게 생활해 온 사람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간호학과 교수로써 미래의 나이팅게일 양성에 최선을 다해 온 것은 물론, 사회운동가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대전여민회 공동대표, 대전시민사회연구소 이사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등 활동경력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도 초반부터는 대전시 여성정책자문관,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위원, 충청남도 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 등 정부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지난해 10월 1일부터는 여성정책개발원장으로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33년째네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난 것 같아요. 또 저희 가족들이 1970~80년대 정치 격랑기를 겪었어요. 그 한복판에 저희 가족이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가족들 모두 사회운동에 특히 열심히 참여한 것 같아요.”

가족 모두 사회운동 중심에 서다 
안 원장은 ‘정치 격랑기 한 복판에 가족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큰 오빠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큰오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니다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어요. 그 일로 아버지도 해직 되셨죠. 물론 이후 무죄 판결을 받고, 아버지도 복직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족 모두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경북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교직에 있다 퇴직 후 여전히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큰언니, 정치 격랑기 대표 주자로 훗날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 암울한 청년기를 보낸 큰 오빠, 서울대를 나와 한국일보기자로 근무하다 해직 후 한겨레 창간멤버로 참여했고 현재도 문화운동을 하는 둘째 언니를 포함해 가족 모두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라고 설명한다.

“저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NGO 활동도 함께했어요. 때문에 한동안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죠. 교수나 똑바로 하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념을 꺾지 않고 꾸준히 사회운동에 참여했고, 30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더 활동했어요. 물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가족들이 어려운 일에 대해 서로 탓하지 않고 잘 견딘 것 같아요. 특히 엄격하고 원칙적이셨지만 따뜻하고 청렴하셨던 부모님의 울타리가 컸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안 원장의 형제자매들은 고비 때 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잘 견뎌냈고, 현재는 각자의 분야에서 뒤지지 않는 주역으로 활동하며, 사회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간호학 선택은 ‘신의 한수’
33년 동안 전문 간호인 양성에 주력해 온 안 원장은 원래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큰오빠 문제로 집안에 소용돌이가 쳤고 이 때문에 신문방송학은 안된다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간호학을 공부하게 됐단다.

“아버지가 해직되시면서 생활이 어려워졌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모두 큰오빠 때문에 데어서 신문방송학을 만류했어요. 그때 마침 큰언니 부부가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내려오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간호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언니가 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 터라 1년여 동안은 많이 방황했다는 안 원장. 하지만 2학년 때부터 사회전반에 간호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또 임상실험 중 다양한 계층을 만나면서 간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단다. 그리고 결국 보건대학원까지 학문을 이어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했지만 제게는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더 깊게 보게 됐고, 여성정책, 사회정책을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제 전공은 자연사회간호학이에요. 여성정책개발원장 임기 동안 충남 여성들의 리더십 발굴을 통한 인재로 제자리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학생들을 위해 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난 안 원장. 그의 형제자매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대전으로, 또 일부는 초등학교 때 대전으로 전학 가 학업을 이어갔다. 지금은 고인이 된 부친이 생전에 교편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발령 때마다 옮겨 다녀야 해서다. 물론 지금도 모두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가슴 속에 고향이라는 두 글자를 항상 새기고 생활한단다.

“방학 때면 항상 고향에 와서 지내다 갔어요. 친척분들이 계셨었거든요. 지금은 모두 떠나셨지만 요즘도 1년에 한 두 번씩은 들릅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 같아요. 아련함 같은 것이겠죠.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고향 어른들에게 인사할 수 있어 좋네요.”

전문 간호인 양성은 물론 충남도 여성·가족들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개발하는 두뇌기관인 여성정책개발원 수장으로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안정선 원장은 중국 길림 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를 하고 있는 큰 아들과 현재 대학 4학년인 둘째 아들 등 형제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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