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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한순간의 낙뢰로 죽음을 맞은 400년 곰솔

이야기가 있는 충남의 나무 21: 서천 신송리 곰솔

2014.12.01(월) 21:06:57 | 탈론 (이메일주소:malgmywoo@naver.com
               	malgmywoo@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혹시나 옛모습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하여 찾아왔다. 한때 하늘을 향해 위용을 한껏 자랑했을 노거수가 썩은 밑둥만 덩그라니 남긴 채 볼품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꼴이라니…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서천군 서천읍에 위치한 신송리 곰솔을 찾은 시각은 오후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이었다. 좁은 마을 골목길을 돌아 언덕으로 올라서니 한 눈에 노거수의 썩은 아랫도리 몸뚱아리가 보였다. 가슴높이 둘레만도 4m가 넘었던 나무의 사후는 이리도 쓸쓸했다. 이미 죽었으니 노거수가 아닌 고거수(故巨樹) 라고 해야 하나.
 

썩은 밑둥만 남은 신송리 곰솔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 썩은 밑둥만 남은 신송리 곰솔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원래 신송리 곰솔은 특별히 전하는 전설이나 설화가 없는 평범한(?) 노거수 중 하나였다. 마을 뒤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고립목이며 서낭나무로 보호되어 왔다. 동네에서는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당산제를 지냈는데, 제주는 자손이 없는 사람으로 일주일 동안 목욕을 하고 제를 올리면 자손을 얻을 수 있었으며 당산제를 지내야 마을이 평안하고 재앙이 없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냈던 제사상만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 동네사람들이 당산제를 지냈던 제사상만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수령은 약 400년에 높이 17.4m, 가슴높이의 둘레 4.48m의 크기로 사방으로 가지가 길게 뻗어 있어, 그 모습이 우산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서낭목으로 민속적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커 1988년 천연기념물 353호로 지정되었다.
 

수령 400년에 높이가 17.4m에 이르러 우리나라 최고의 곰솔이라 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나무였다.

▲ 수령 400년에 높이가 17.4m에 이르러 우리나라 최고의 곰솔이라 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나무였다.


그러나 2002년 번개를 맞은 뒤, 수세가 쇠약해지며 수간부에 소나무 좀벌레 등 심식충의 피해가 발생하여 서서히 죽었다고 한다. 2005년 8월 19일 이 소나무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됨으로써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400년의 세월이 한순간의 낙뢰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2002년 낙뢰피해를 입은 뒤, 2005년 8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어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 2002년 낙뢰피해를 입은 뒤, 2005년 8월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어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한국의 명품 소나무’ 저자인 전영우는 자신의 저서에서 서천 신송리 곰솔에 대해 “막을 수 있었기에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곰솔 주변에 피뢰침만 설치했더라도 낙뢰 피해를 막을 수 있었기에 자연재해가 아니고 인재에 가깝다는 것이다.
 
소나무의 일종인 곰솔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로 한자로는 해송(海松)이라고 한다. 육지에서 자라는 육송(陸松)에 견준 이름이다. 육송의 껍질은 붉은 빛을 띠어 적송(赤松)이라 부르는데, 반면 해송은 줄기 껍질이 검은 빛을 띠고 있어 ‘검은 솔’로 불렸다가 ‘곰솔’로 바뀌었다. 서천 신송리 곰솔은 규모에서나 장엄미에서 단연 우리나라 최고 곰솔이라 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나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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