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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행복하게 일하니까 건강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청양 산채농원 황인세 씨의 행복한 노년보내기

2013.10.14(월) 10:51:34 | 관리자 (이메일주소:ladysk@hanmail.net
               	ladysk@hanmail.net)

행복하게일하니까건강은덤으로따라옵니다 1          
농사는 물론 사진찍기도 즐기면서 멋지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황인세씨.

이미 칠순이 넘었지만 특용작물 농사를 지으면서 즐겁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소개한다. 일이 있어 행복하고 건강도 유지한다는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 칠갑산 다래·산채농원 황인세(72) 대표다.

군복무 제외하고 고향 떠나본 적 없다
정산면 천장리에서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향 지킴이로서 유명하다. 군 복무 기간만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1968년 김수복 씨와 결혼 후에도 부모를 봉양하며 지냈다. 1977년 한국농어촌공사 전신인 농지개량조합에 입사해 24년간 근무하면서도 집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농사도 도우며 생활했다.

“부모님께서 벼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래서 일을 도와드리며 직장에 다녔죠. 정산출장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뒤돌아보면 농사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직장에서가 어려웠죠. 제가 다닐 당시에는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로 농지개량조합이 운영됐었어요. 직원들이 조합비를 징수해야 해서 힘들었고, 심적인 부담이 컸죠. 그러다 정부에서 조합비를 감면해 주고 다시 공사화 되면서 조합비가 없어지고 현재에 이르렀죠.”

황 대표가 근무했던 농지개량조합은  1970년에 토지개량조합을 개칭한 것이다. 기존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를 통합해 2000년 농업기반공사로 설립됐으며, 한국농촌공사(2005년)를 거쳐 2008년 현재의 한국농어촌 공사로 명칭이 변경됐다.

“지금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기관이 됐고, 모든 여건들이 좋아졌어요.”


다래 생산량 전국에서 최고
이렇게 퇴직 후 그는 다래농사를 시작했다. 2002년이었고, 종묘업을 하던 친척의 권유였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다래 심고 소득이 생기려면 10년은 지나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당시 제가 환갑이 넘기도 했고요. 그런데 권유한 분은 저보다 15살 위였고, 그분한테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죠.”
그가 다래농사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퇴직 후 일없이 지낼 수 없었다는 것. 움직일 수 있을 때 목표 세우고 열심히 하다보면 건강도 소득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330제곱미터로 시작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산림과학원 등 다래와 관련된 곳곳을 벤치마킹 다니며 배웠죠. 이후 규모를 늘려나갔고 지금은 4000여 제곱미터 정도 됩니다.”
2002년부터 다래농사를 시작한 그는 8년 후에 첫 수확을 했다. 많지는 않았다. 9년째였던 2011년 약 1톤을 수확했고, 10년째였던 지난해는 1톤에 조금 못 미쳤다. 날씨 때문이었다.
“올 목표가 약 2톤 이었는데 목표를 채운 것 같아요. 킬로그램 당 1만2000원 씩 경동시장과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국 다래농가는 60여 곳. 5곳을 제외하고 모두 시작단계다. 이중 황 대표가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한다. 또 2012년 한국다래연구회가 구성됐고, 현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다래는 100퍼센트 친환경이고 다른 과수에 비해 재배가 쉬워요. 열매는 생과나 효소·장아찌, 어린순은 나물, 수액은 음료, 뿌리는 한약제, 줄기는 공예품, 나무는 그늘 쉼터 등 여러 가지로 이용이 가능하고요.”


최소 10년 견딜 각오로 시작해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양의 다래를 생산하는 황 대표. 여기까지 오는데 10년여가 걸렸다. 하지만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던 터라 조급해하지 않았단다.
“초창기에 가족 모두 하지 말라고는 못하고 아예 입을 닫아버리더군요. 집안에 냉기가 흐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열심히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어요. 다른 작물들도 실패하기 쉽죠. 특용작물은 더 그래요. 10년쯤은 견뎌야 한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어요. 주업으로 생각하고요.”
그는 8년 전부터 복분자 농사도 시작했다. 현재 총 1300여 제곱미터에 재배하고 있다. 수확을 끝냈고 꾸준히 판매하고 있다. 5년 전부터는 곰취 농사도 짓고 있다.
“고추보다 복분자가 실속 면에서 나은 것 같아요. 꾸준히 팔립니다. 괜찮은 과수인 것 같아요. 곰취 농사는 5년 됐는데 시작하고 2년간은 실패했어요. 강원도에서 첫해에는 묘목으로, 2년째는 씨앗으로 가져다 묘목 만들어 심었는데 잘 안되더군요. 3년째에는 다른 곳에서 씨앗을 가져다 묘목을 만들어 심었고, 그 때부터 잘 자랐어요. 2012년도부터 수확했고, 현재 2300여 제곱미터에 재배하고 있어요.”
이외에 곤드레 나물도 재배하고 있는 황 대표는 자신이 재배하고 있는 것들로 산채 잔치를 열어보고 싶단다. 내 후년쯤이면 가능할 거 같다고 말한다.
“벼농사와 표고 농사도 좀 짓고 있어요. 고추농사는 7년째 안 짓고요.”


재밌게 일하며 노년을 행복하게
황 대표는 가족들은 ‘일 좀 그만하라’고 성화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것이란다.
“다래, 복분자, 곰취와 관련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많은 분들이 찾아와요. 사람들이 찾아와 주니 더 행복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더 하려는 겁니다.”
황 대표는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이장을 맡아 보기도 했다. 또 마을에서 열리는 칠갑산얼음축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 표고버섯을 시설이 아닌 산에 있는 나무에 재배했어요. 이른 봄인데 버섯에 물을 줘야할 것 같아서 스프링쿨러를 나무에 설치하고 물을 줬죠. 그런데 다음날 보니 멋있게 얼었더군요. 그런 의견이 기초가 됐고,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도 그랬고 앞으로도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단다. 그 어느 젊은이보다 열정적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황인세 대표는 부인 김수복(69)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뒀으며, 현재 둘째 재영(39·청양매일유업)씨와 함께 살고 있다. 큰아들은 해양경찰, 셋째 아들은 경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딸은 출가해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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