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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남 전역에 시장이 서는 것을 막게 한 사건

6월6일 현충일을 맞아 예산 한내장터 만세운동을 기립니다

2013.06.06(목) 00:12:10 | 권혁조 (이메일주소:rnjsgurwh19@hanmail.net
               	rnjsgurwh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가족과 이웃 친지 모든 사람들의 깊은 마음과 정성을 담아 당신의 숭고한 뜻에 영원한 추념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6월6일 현충일.

 무슨 말을 더 필요로 할까요. 6월6일에만 더 애틋한 마음이어서 죄송하고, 6월에만 기억 하는 듯 해서 후손으로써 마음 가눌길 없이 송구하지만... 그나마 현충일에라도 당신께 감사할수 있어서 그 송구함을 조금은 덜 수 있을것 같습니다.

예산 한내장터 4,3만세운동 기념탑

▲ 예산 한내장터 4,3독립만세운동 기념탑


내포 일대에서 가장 큰 장이었던 이곳 예산 한내장터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 4월 3일에 5,000여 군중이 조국광복을 외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탑과 당시에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한수의사의 현충비와 장문환의사의 의거기념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인한수 의사와 장문환 의사 초상화

▲ 인한수 의사와 장문환 의사 초상화


또 충의각인 대의사를 세우고 그 안에 두분의 영정을 모셔 놓았습니다.

 대의사 정면 기둥에도 당시 만세운동을 일으켜 조국 광복의 의지를 보인 분들의 뜻을 기리는 문장을 써서 걸어 두었습니다. 

두 분의 영정을 여기에 모셔놓은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4월 3일 오후4시쯤 고덕면사무소 앞마당에 면내 이장과 반장이 동원한 면민과 군 일대 인원 5,000여명이 모여 조인원 선생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각마을 반장이 태극기를 들고 군중을 선도하며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인한수의사가 일본헌병에 저항하다 순절하셨습니다. 그후 장문환 의사님과 조인원선생이 뒷일을 수습하고 군중을 인솔, 보호하며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이 만세운동은 내포지역 인근 덕산, 봉산, 예산, 신양의 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 후 조국 광복에 대한 열의와 열망을 꽃피우게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날 장터에서의 만세 시위에 위기를 느낀 일본이 그 후부터 충청남도 전역에 시장이 서는 것을 아예 금지했다고 하는군요.

 이날 시위결과 인한수 의사가 순국하셨고 장문환 의사님 등 여러명이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6개월 내지 1년6월간 옥살이를 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후 인한수 의사님은 국가에서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뜻을 가리기 위해 이곳에 현충비와 각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선열들의 자주독립의 의지를 기려 해마다 이곳에서는 기미독립만세운동 행사를 가지게 되었으며, 4월3일에는 이곳에서 <독립만세운동 기념 문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당시의 의거를 떠올리며 오늘 다시금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쳐봅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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