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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모국의 품에서 행복하신 우리 어머니"

97세 노모와 함께 서천에 안착한 사할린 동포 남매<br>“어머니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 오길 잘했다”

2013.04.16(화) 13:33:29 | 뉴스서천 (이메일주소:clxk77j@naver.com
               	clxk77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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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한남 할머니 가족

“아흔 일곱 살 되신 우리 어머니께서 느끼시는 행복을 많은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김기찬씨의 목소리에는 노모의 행복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자식으로서의 벅찬 감동이 묻어나고 있었다.
김숙자씨(78·서천군 서천읍)는 지난 2010년 많은 관심 속에 서천에 안착한 사할린 동포 2세대로 당시 아흔이 넘은 이민 1세대인 노모(원한남·97)와 동생 김기찬씨(72), 그의 아내 기란축 올가씨(68)와 함께 3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산주의국가에서 하지 못했던 종교생활도 종천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 원한남씨가 남편 고 김영실씨(1974년 작고·묘소 사할린)와 함께 함경북도 덕산면에서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된 것은 70년 전(1943년)인 27살 때였다고 한다. 70년 가까이 러시아에서 살아온 탓에 한국말도 많이 잊었고 슬하의 9남매와 그 자손들이 모두 러시아에서 살고 있어 그들은 한국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들은 모국에서 잊혀져가는 제사 등 많은 우리의 전통을 여전히 지켜가고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의 호적서류

▲ 일제 강점기 때의 호적서류



그들에게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의 불씨가 일게 된 것은 20년 전인 1993년 7월, 김기찬씨의 작은 아버지 김영교씨(88·서울)와 51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삼성전자 러시아팀의 통역요원으로 근무했던 김기찬씨에게 회사 측에서 찾고 싶은 가족을 물어와 가지고 있던 일제 강점기 호적관련 서류를 보여줬고, 얼마 안 돼 작은아버지와 고모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만난 후 전혀 연고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원한남 할머니의 모국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졌던 것일까. 10년 전쯤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김숙자씨 남매들에게 “작은 아버지도 계시고 고모도 계신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숙자씨의 작은 아버지가 직접 그린 가계도

▲ 김숙자씨의 작은 아버지가 직접 그린 가계도



러시아에서 평생을 살아온 9남매이지만 아버지의 3년 상을 치를 정도로 ‘효’를 마음속에 담고 자라온 그들은 어머니의 바람을 이뤄드리기 위해 9남매 중 4남매가 함께 모국으로 돌아왔다.
자식, 손자들은 러시아에 두고 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릴 그들이지만 아흔이 넘은 노모의 행복을 위해 이곳으로 왔고, 어느새 3년이 흘렀다. 그런 김숙자씨 남매이기에 어머니의 “행복하다”는 말은 그들에게 남다른 기쁨이 될 거라고 짐작 하고도 남는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이곳에서 가장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기부’, ‘봉사’라는 개념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행복한 여생을 위해 모국으로 돌아온 김기찬씨 남매에게 가장 감사한 건 노인장기요양제도와 어머니를 매일 찾아와 주는 김순덕 요양보호사, 김옥순 한마음요양센터 센터장이라고.

김기찬씨는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며 곁에서 수족이 돼 주시는 숙자 누님,  덕분에 가족들 모두 한국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고, 김순덕 요양보호사님이 매일 방문해 돌봐주셔서 어머님이 편히 지내실 수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몇 번이고 전했다.
그리고 김기찬씨는 “어머니 백수잔치를 해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내와 여동생(김임순·68·오송)이 ‘무엇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느냐’며 ‘살아계실 때 지금이라도 건강히 살아계신 걸 축하해 드리자’고 했다”라며 “한국에는 어버이날이 있다고 해서 이번 어버이날에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다”라고 다가오는 어버이날 계획을 귀띔했다. 누나 김숙자씨도 이제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게 된 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려서인지 “그냥 건강하게만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짧은 몇 마디에 진심을 담았다.

이들이 강제로 끌려간 낯선 이국땅에서도, 수 십 년 세월로 인해 낯설어진 모국 땅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힘은 어느 곳에서도 소중히 지켜온 가족들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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