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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그 시절 봉명동 고갯마루 이야기

할머니, 낙상 조심하세요!

2012.12.06(목) 13:31:15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온통 눈으로 덮였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온통 눈으로 덮였습니다.


그해 겨울에도 폭설이 왔습니다. 따라서 마치 도토리 키재기 하듯 그렇게 못 살았던 우리네 서민들의 미간엔 밭고랑보다도 더 깊은 골이 패이곤 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지금처럼 각 가정마다 보급된 수도(수돗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난방 역시도 산에서 해 온 땔감 내지 드문드문의 집에선 연탄을 때서 해결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거든요.
 
늘 마셔야 하는 식수는 그래서 약 200미터 이상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우리 동네 천안시 봉명동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물지게로 져다 나른 뒤에 부엌의 커다란 물독(항아리)에 담아놓고 먹곤 했습니다.
 
따라서 어제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에 물지게를 진다는 건 언감생심이었지요. 괜스레 그러다가 낙상이라도 하는 날엔 그야말로 언덕 위에서 아래를 향해 굴린 공처럼 데굴데굴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마실 물조차 한 모금도 없는 경우에 처할 때가 분명 생기곤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어떤 이치입니다. 마치 쌀이 똑 떨어져서 그야말로 죽 한 그릇조차 못 끓여먹는 참담한 경우와의 조우처럼 말이죠. 그래요, 그때가 바로 그랬습니다.
 
 

한겨울 빙판길의 효자, 연탄재입니다

▲한겨울 빙판길의 효자, 연탄재입니다


“야, 손자야. 물이 한 모금도 없는디 어쩌냐?” 요즘 아이들은 겨울방학이 되어도 학원에 가는 따위와 급속도로 보급된 휴대(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갖가지 게임 삼매경에 빠져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민(초등)학생이었던 저로선 그 또한 저 세상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막역한 동경의 장르였지요. 따라서 아무리 황금 같은 겨울방학일 망정 그저 하는 거라곤 또래들과 어울려 제기차기 내지, 계집아이들이 고무줄 놀이 할 때 고무줄 끊고 달아나기 등 아주 전근대적인 고루한 놀이뿐이었습니다.
 
폭설이 쏟아져서 꼼짝 못 한다는 전갈을 듣고 뒷산으로 쫓아가 꿩과 토끼를 잡는 놀이문화는 기실 일 년에 한두 번도 안 되었고요. 하여튼 할머니 말씀에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냉큼 물지게를 지고 비틀비틀 공동우물로 갔습니다.
 
그러나 물을 지고 돌아오던 중 그만 미끌~하며 빙판길에서 낙상(落傷)하는 바람에 물을 뒤집어 쓴 채 더욱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처럼 고급의 운동화가 있던 시절도 아닌, 그저 검정고무신을 신고 갔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설상가상 발까지 삐는 바람에 한참을 주저앉아 금세 퉁퉁 부어오른 발목을 연신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한데 손자가 안 오니까 할머니도 궁금하셨던지 저를 찾느라 저만치, 가히 고갯마루 언덕 위에서 이쪽 아래로 내려오시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우리 손자 어딨는 겨?” 그 소리에 얼른 일어나며 “할머니, 나, 여기있슈, 얼른 갈 테니께 도로 집으로 가셔유~ 미끄러워 위험해유!”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었지요.
 
하얀 고무신을 신고 오시던 할머니는 그예 그 빙판길에서 낙상을 하신 것입니다! 그 때문으로 할머니께선 얼추 두 달 가량이나 두문불출 꼼짝을 못 하셨지요.
 
물질적 풍요는 객관적 장밋빛 미래마저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 손자사랑만은 철철 흐르는 강물 이상으로 풍요했던 그 시절 겨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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