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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밥먹는 시간조차 아까운 퀵서비스맨

2012.03.17(토) | 만석꾼 (이메일주소:rlaakstjr69@hanmail.net
               	rlaakstjr6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OO씨 댁 맞습니까? 퀵서비스입니다.”

 내가 신청한 트럭 부품이 퀵으로 배달되어 왔다.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보노라니 퍼뜩 옛날 생각이 나서 반가웠다.

 “커피 한잔 마시고 가요”라며 옷소매를 붙잡자 퀵 기사님은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시간이 생명이라... 안녕히 계세요”라며 부르릉... 휭하니 떠난다.

 운전 조심하라는 인사가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줄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왜 위로일까? 퀵서비스라는 일 자체가 엄청난 체력적 노고와 정신적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얼마전까지 천안에서 퀵 서비스를 했기 때문에 그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퀵 서비스를 하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산 생각 “인생이란 뭘까?”하는 것이었다.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당장 때려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꾹 참으며 근 3년 가까이 해온 일. 그렇게 일을 하면서 득도(?)한 기분을 느끼며 “인생” 운운하는 그런 개똥철학에 대해 고민도 해본 것이다. 

  퀵 서비스 기사들은 목숨을 내놓고 도심과 농촌 어디든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고객들이 요청한 물건을 시간 안에 배달하기 위해서다. 나름 뛰어난 오토바이 실력으로 한시도 시속을 줄일 수 없고, 어떤때는 욕 바가지로 먹으면서 차량 사이의 빈틈을 잽싸게 파고들어 신호 대기줄 제일 앞에 서야한다. 이렇게 달리면 시간내에 물건을 배달할수 있다.

 독촉하는 고객들 때문에 각종 교통법규 위반으로 숱하게 딱지를 끊었다. 그러나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점심시간. 하지만 밥먹는 시간조차 아깝다. 한 번은 “식사 중이니 기다려 주세요” 했더니  당장 퀵 신청이 취소돼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점심을 편의점에서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컵라면이 채 익기 전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설익은 라면을 반쯤 먹다 버리고 온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겨울에 영하 7, 8도의 날씨에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면 온 몸이 바람에 시리다. 볕이 들지 않는 터널 안을 지날 때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군용 라이더쟈켓에 두툼한 가죽바지, 방한신발은 기본이다. 위로는 6겹, 아래는 4겹의 옷을 겹쳐 입어 걸을때는 오리처럼 뒤뚱거리기까지 한다. 오토바이가 시속 80km로 달릴 때는 체감온도가 10도 떨어진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다.

 오토바이 손잡이엔 열선을 감고 커버를 씌웠다. 얼어붙을 것 같은 날씨에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귀와 발은 동상에 걸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퀵 기사들이 다 마찬가지다.

 주문 사이사이 비는 시간은 퀵 기사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기사들이 즐겨 찾는 곳은 은행 현급지급기 안이다. 몸을 잠시 녹이기도 하고 노숙자마냥 쭈그리고 앉아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 

 오후 3시~5시 피크시간대에 열심히 달리려면 틈틈이 쉬어야 한다. 그리고 오후 6시쯤 일을 마칠때쯤에 그날 결산을 본다. 운 좋으면 15만원쯤, 보통이면 10만원선, 그리고 가장 허탕친 경우는 5만원 안팎이다. 퀵서비스 업체가 많아지면서 기사들끼리도 경쟁이 심해져 수입도 줄었다.

 퀵서비스 기사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뭐니뭐니 해도 교통사고다. 내가 일하던중 보았던 가장 가슴 아픈 사고는 동료 기사가 목숨을 잃은 일이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대기중 시내버스가 옆에 와서 그대로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사망사고가 아니라도 보상문제가 아주 까다롭다. 보험사에서 퀵서비스의 하루 일당을 일용직 노동자 수준인 4만원으로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10만원가량을 버는 퀵 서비스로서는 입원을 오래 하고 있을수록 손해가 쌓이는 셈이다.

 더군다나 사고시 오토바이가 고장 날 경우 오토바이 수리비는 모조리 우리 몫이니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다.

사고를 내거나 혼자 다친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상대방에게 지불할 손해배상비, 자신의 치료비, 오토바이 수리비에다 한동안 일을 못하는 것까지 이중, 삼중고를 겪게 된다.

 퀵서비스 기사들이 제대로 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업종이 법적으로 특수형태업무종사자, 즉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 사고를 피한다 해도 가랑비에 옷 젖듯 몸이 망가지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다. 하루 종일 매연에 노출돼 호흡기 질환에도 무방비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눈이 침침해 지고 충혈돼 TV시청조차 힘들다. 한번 찾아온 감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고 목의 통증은 특히 오래 남는다.

 돈 벌이도 변변찮고 만성적인 위험과 심각한 공해에 시달리면서도 퀵 서비스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나이 먹고 회사에서 잘리고 나면 뭘 할 수 있겠나. 일자리가 넘쳐 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오토바이라도 몰 수 있으니 생계를 위해 붙어 있는 것이다. 큰 사고가 나거나 큰 병에 걸리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 사는 데 필요한 돈은 벌어야 먹고 사니까. 

 나는 그렇게 3년 정도 퀵 일을 하다가 그나마 조금 모은 돈으로 귀향해 지금은 트럭을 하나 사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퀵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모두다 소중한 노부모들의 애틋한 아들들이고, 남편이고, 아빠들이며 직업인이다. 그분들 가슴속에도 소중한 희망이 자랄 것이다. 그게 인생 아닐까?  "희망"이라는 힘

 오늘도 생명을 걸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분들께 건강과 안전을 기원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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