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생명력에 대한 경외와 혐오

심각한 파라독스를 경험하다

2012.02.06(월) | 김마령 (이메일주소:bymytree@gmail.com
               	bymytree@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름이 절정으로 접어들 무렵이면 콩을 사서 얼려두고 먹는 것이 내게 연례행사가 되어있다. 콩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콩은 완두콩이다. 대개의 콩은 가을이 수확 철이지만 완두콩은 7월 초순이면 딴다. 깍지 옷을 입은 채 망사자루에 담기거나, 옷 벗겨져 알 콩인 채로 시장에 나와 손님을 기다린다. 건강 형편상 콩을 많이 먹어야 하는 나는 알 콩은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깍지 콩을 자루 째 사서 깐다. 몇 번 세척을 하고 물기를 말린 뒤 냉동실에 넣는다. 이어 가을에 나오는 다른 콩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한 다음 냉동실에 저장한다.

지난여름에는 완두콩을 냉동실에 다 넣지는 않았다. 바로 먹을 것 약간 양은 얼리기보다는 냉장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3주 먹을 분량을 비닐봉지에 담아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일반냉장고에 넣지 않고 김치냉장고에 넣은 이유는 싹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내 김치 냉장고 온도는 섭씨 0도에 맞추어져 있다. 0도는 살얼음이 살짝 어는 온도다. 염도가 높은 김치도 어는 온도이기 때문에 콩에서 싹이 나지는 않을 것이고, 중간기 정도 보관하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2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밥에 얹을 콩을 꺼내려고 콩 봉지를 꺼냈다. 한 움큼 집었는데 눈이 의심되었다. 콩들이 죄다 올챙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싹이 난 것이었다. 섭씨 0도는 초겨울 날 기온에 해당된다. 그 온도는 추위를 느끼게 하는 온도다. 사람이 추위를 느끼면 식물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활동이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나는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단지 생각이었고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생명력에대한경외와혐오 1  
 완두콩 싹. 올챙이가 따로 없다. 생명의 시작은 다 비슷한 모양을 하고있다.

콩 꼬리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신기했다. 빙점에서도 생명활동을 하는 콩의 도전적인 생명력과 번식력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김치 냉장고 안에서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동력이 내 몸의 빈약한 활동에 자극으로 작용했다. 본받아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완두콩보다는 좀 늦게, 여름이 가기 전에 사놓는 과채가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감자다.  도내 감자 중에 가장 맛좋다는 서산 어느 곳의 감자를 한 박스 샀다. 20kg 짜리 한 박스를 사면 한 철 먹고도 반이나 남는다. 남는 것을 겨울에 먹으려면 역시 갈무리를 해야 한다. 그냥 두면 썩기도 하고 싹이 나서 버리는 것이 반이나 된다. 감자처럼 싹 잘 나는 과채도 없을 것이다. 습기 차지 않게 신문지를 사이사이에 끼어 몇 봉지에 나누어 담고 김치 냉장고에 일부를 넣는다. 남은 일부는 공간이 모자라서 일반 냉장고의 채소 칸에 넣는다. 이렇게 갈무리 해놓은 다음 겨울 내내 반찬도 하고 쪄먹기도 한다. 감자의 비타민 C는 열을 가해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한절기의 훌륭한 비타민 C 공급원이다.

그런데 가을 끝무렵부터 이것들이 싹이 나는 것이다. 김치냉장고에서도 싹이 나고, 일반 냉장고 채소 칸에 들어간 놈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싹 난 감자를 그냥 먹을 수는 없다. 콩과는 달리 감자 싹에는 독이 들어있다. 싹 난 감자를 먹으려면 싹과 씨눈 부위를 파내야 한다. 당장 쓸 것 몇 알만 파내어 먹다가. 잊고 있으면 어느 사이 남은 것들의 싹이 경쟁하듯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된다. 초겨울 어느 날 나는 두 냉장고에서 감자를 모두 꺼내어 싹 파느라고 손이 바빴다. 먼저 1차로 팠는데, 2차로 또 파는 것이다. 감자 한 알에 씨눈이 여러 개다 보니 먼저 싹 내는 씨눈이 있는가 하면 늦게 내는 씨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알이 큰 특대 종으로 샀더니 면적이 넓어서 씨눈이 좀 과장해서 수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이놈들아 생명활동 좀 하지 마라. 나는 안 해도 되는 일을 공연히 시키는 감자한테 대고 투덜댔다. 생명활동을 금지시킨다? 기리고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

여름에 같은 조건에서 싹을 내는 완두콩의 생명력에 외경과 신비를 느낄 때와는 달리, 귀찮음과 혐오감이 마음에 차올랐다. 그것은 상당한 파라독스였다. 같은 생명활동을 두고 어떤 것에는 본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어떤 것에는 끈질김에 지겨운 마음이 드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단시키려는 아이러니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동을 시키기 때문일까.

완두콩의 싹은 한 개다. 숫자가 적은 데다 그 모양이 귀엽기까지 하다. 그리고 독이 없어서 그냥 먹어도 된다. 곡식류는 싹 나면 오히려 싹에 영양소가 더 풍부해진다. 발아현미와 콩나물 그리고 새싹 비빔밥이 그 좋은 예들이다. 하지만 감자는 싹이 너무 많은 데다 씨눈 부위에 독까지 생긴다. 그냥 먹을 수 없다. (감자 싹을 먹어도 되는지, 그건 들어보지 못했다.) 그 상반되는 특성들은 두 종의 개성이면서 개체 보존방식이기도 하다. 동시에 종족보존방식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귀차니즘이 발동했고, 파라독스가 생긴 것이다. 자연 속에서 곡식과 과채와 동물과 인간. 이들은 대등한 생명체로 존재한다. 여러 개체들의 특성을 존중하고 대등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심대한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개성과 대등성. 소중한 개념들이고 현상들이다.

 

김마령님의 다른 기사 보기

[김마령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