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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운명을 갈라놓았던 슬픈 졸업식

2012.01.16(월) | 조연용 (이메일주소:whdydtnr71@naver.com
               	whdydtnr7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겨울과 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는 2월은 1년 중 가장 짧은 달이다. 그래서 잠깐 한눈을 팔다가는 겨울이 후딱 가버리고 봄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향한 졸업식이 있는 달이다.

잊지 못할 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는 중학교 졸업식. 내가 다닌 외산 중학교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가파른 산등성이에 세워진 허름한 건물의 사립학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창에 비친 우리 학교를 닭장쯤으로 오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란 생산이 안 되었으니 분명 닭장은 아니었다.

1987년 2월 시골 중학교 졸업식은 우울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다. 한 반에 65명씩 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 중 3분의 1은 산업체 고등학교로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산업체 고등학교로 가는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선택한 어쩔 수 없는 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떠나보내는 선생님도 떠나는 학생들도 모두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운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졸업을 앞 둔 며칠 전, 내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오랜 시간 내 기억의 새 둥지에서 부화된 허공의 이정표 같은 말씀이었다.

“지금 이 교실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중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대학까지 가는 친구들도 있고, 또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인으로 살아갈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어느 쪽으로 가든 꼭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내가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스물이 되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뺀 그 어떤 남자의 손도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찍 사회에 나가 외로움을 겪게 될 제자들이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할 까봐서 해 주신 말씀이 아니었나 싶다. 난 정말 선생님께서 해 주신 그 말씀을 부적처럼 가슴에 붙이고 다니면서 스무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 이외에 그 어떤 남자의 손도 잡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스물까지 잘 지켜온 손을 스물한살에 놓치긴 했지만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졸업이 그토록 슬픈 의식 중에 하나였다. 나만 해도 마을에 있는 여자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행운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운명이 나뉜 친구와 나는 운명의 사슬에 갇혀 오랜 시간 아파하며 살아왔다. 그때 산업체 고등학교에 갔던 친구 중 하나는 채 스물이 안 되어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스물다섯에 셋째 아이를 낳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유는 가난한 집안의 못 배운 며느리라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그 원인이었다. 많이 배운 윗동서들은  가끔 집에 들러 돈 봉투를 내놓고 가면 그뿐이지만 내 친구는 1년 365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몇 번인가 친정엄마한테 도저히 더는 못살겠다고 울면서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지금도 그 친구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때 고등학교 원서 쓰던 날. 그렇게 싸우면서 헤어지지만 않았어도 어쩜 그 힘든 시간들에 대해서 나에게 털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날 산업체 고등학교에 원서를 썼던 두 친구는 내 선택을 비웃어가며 나를 따 돌렸다. 그땐 나도 화가 치밀어서 같이 맞붙어 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친구와 나에겐 서로 따뜻한 우정을 쌓아갈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시절 중학교 졸업은 우리들의 운명을 갈라놓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내 아이와 같은 또래로 자라고 있을 그 친구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한다. 엄마 없이 얼마나 힘들게 자라고 있을까? 들리는 소문에는 그 남편은 새로 재가하고 아이들은 할머니가 키운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다. 다만 먼저 간 친구의 아이들이 잘 자라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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