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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따지고 보면 우리도 '3대 패밀리'

2009.12.07(월)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천안시 인구가 지난 11월로 55만 명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보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천안의 인구가 이처럼 급증했다는 건 가히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라 해도 무리는 아니리라.

동남구와 서북구의 두 개 구청이 있는가 하면 서울서 출발한 전철이 천안도 부족하여 인근의 신창역까지를 관통하는 즈음을 보자면 천안은 이제 명실상부한 수도권이지 싶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천안의 인구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어렵게 인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나의 출생지는 천안시 봉명동이다.
이후 와촌동으로 이사를 하여 몇 해를 살았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한 뒤에는 성정동에서도 살았다.
그러니까 세 개의 동(洞)에서 두루 살아본 셈이다.

그제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어 천안에 갔다.
지금은 아산에서 살고 있지만 여하튼 고향과 본적이 천안시 봉명동인 동창회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와촌동 출신의 신임회장에게 중책을 맡겼다.
그 모습을 보자 친구 하나가 귀엣말의 농을 쳤다.
“드디어 우리 ‘와촌파’가 득세(得勢)하기 시작하는구나.”

의미 있는 그 말에 박장대소를 금치 못 하면서도 지난날의 풍경들이 어렴풋하나마 기억의 강물 위로 떠오른 조각배가 되어 나타났다.
우리가 함께 다녔던 천안 성정초등학교는 봉명동과 성정동, 그리고 와촌동에 사는 녀석들이 주류를 이뤘다.
하여 한 때는 치기(稚氣)에 편승하여 동네간의 패싸움을 한 적도 없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고급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과거 천안역의 바로 뒤엔 충남방적이란 큰 공장이 있었다.
그리고 거길 지나면 하천의 둑과 어우러진 와촌동이 있(었)는데 얼추 40년 만에야 비로소 조우한 그 친구(와촌파 운운한)는 내가 와촌동에서 살 적에 바로 지척에 살면서 무시로 함께 뛰놀던 친구였던 것이다.

여류한 세월은 우리 모두를 지천명의 언덕에 올려다 놓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삼삼한 것은 과거로의 추억여행이란 열차가 퍽이나 그리워진다는 거다.

아무튼 ‘봉명파’에 이어 ‘와촌파’가 실세로 활약하게 되었다.
고로 차기 회장은 어쩌면 반드시 성정파가 권력(?)을 장악해야 맞지 않을까 싶었다.
왜냐면 우리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불변하게 봉명동과 성정동에 이어 와촌동에 사는 녀석들이 이른바 어떤 ‘3대 패밀리’를 이루고 있으니까.
‘패밀리’라는 건 비단 지금도 쉬 회자되는 한국 조폭의 3대 패밀리로 알려진 속칭 ‘양은이 파’와 ‘서방파’, 그리고 ‘OB파’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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