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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황희·권진 3정승이 '구괴정'서 회동하다

느티나무 3그루씩 심고 정자지어 국정현안 논의

2021.09.10(금) 15:23:03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구괴정
▲ 아산 맹씨행단 구괴정의 느티나무. 9그루가 심어졌지만 현재 2그루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왕이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던 조선시대. 국정 최고기관 의정부와 실행 부처인 육조의 권력 조정에 따라 왕권은 강화되기도 반대로 약화되기도 했습니다. 의정부가 육조를 나눠 관리하는 이른바 ‘의정부서사제’는 신권을 강화시키고 왕권을 약화시키지만, 육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지시를 받는 ‘육조직계제’는 왕권을 강화시키는 대신 신권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조선시대 육조직계제의 대표적 왕은 3대 태종입니다. 이른바 왕이 모든 국사를 챙긴다는 ‘만기친림(萬機親臨)’의 왕권강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반면 의정부서사제를 부활시킨 것은 그의 아들 4대 세종으로 분권을 중요한 국정운영 방안으로 삼아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병약했던 세종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맹사성(孟思誠), 황희(黃喜), 권진(權軫) 등 명재상들의 도움으로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고 선정을 베풀어 태종에 이어 조선을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명재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사를 논했던 아산시 배방면 배방읍 맹씨행단(사적 제109호)의 구괴정(九槐亭)을 찾아보았습니다. 구괴정은 맹사성, 황희, 권진 정승이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정자입니다. 이들은 이곳 구괴정에서 국정을 논의하고 한편 시문을 지어 망중한을 즐기고 민정도 살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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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아산시 맹씨행단 구괴정. 현판은 삼상당으로 되어있다. 

구괴정▲ 정자의 안쪽에 별도로 설치된 현판 구괴정.   

충남 아산 맹씨행단 구괴정의 느티나무.
▲ 충남 아산 맹씨행단 구괴정의 느티나무. 600년 세월이 철제에 기대어 있다. 

지금은 600여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느티나무 일곱 그루는 수명을 다해 사라졌고 두 그루만 철제 지지대에 의지해 노쇠한 몸을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정자는 터만 남아 언제 소실되었는지 모양이 어떤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근 신축된 것입니다.
 
정자는 구괴정이지만 바깥 입구 쪽 현판은 세 명의 정승이 국정을 논의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삼상정(三相堂)이 붙어 있습니다. 삼정승은 솥에 세 발이 달려 솥을 바치는 모양으로 삼공이 임금을 돕는 일에 비유한 것입니다. 정작 구괴정 현판은 정자 안쪽에 걸려있습니다.

맹씨행단을 찾으면 외곽의 담장 밖에 자리해 먼저 고택을 살피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고택에서 서쪽방향 협문을 나가면 낮은 언덕을 따라 정면3칸, 측면 2칸 규모입니다.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기둥사이 창호나 벽체가 없이 모두 개방된 팔작지붕 구조입니다.

맹씨고택. 국내 민가(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 맹씨고택. 국내 민가(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맹씨고택.
▲ 맹씨고택. 원래 최영장군의 소유였지만 손녀와 결혼한 맹사성에게 물려졌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ㄷ’자형 구조로 중앙 2칸에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이 있습니다. 홑처마에 지붕은 중앙에 용마루를 가로지르고, 이를 다시 양쪽 방위의 지붕 용마루가 받아 전 후면에 박공을 낸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맹씨고택의 중수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맹씨세적’에 따르면 고려 충숙왕 17년(1330년) 무민공 최영장군이 신축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는 최영장군 나이가 15세로 그의 부친인 최원직이 지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최영 소유였던 고택이 맹사성에게 넘어간 배경은 최영의 손녀딸과 맹사성의 혼인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에 ‘工’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맞배지붕 구조입니다.

맹사설과 그의 부친, 조부의 ▲ 세덕사. 맹사성과 조부 맹유, 부친 맹희도 위패를 봉안한 사당.

고택을 중심으로 북동쪽에는 세덕사(世德祠)가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2칸에 툇마루 공간이 있는 팔작지붕 구조입니다. 맹사성과 조부인 맹유, 부친 맹희도 세 분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10일 고불 맹사성을 추모하는 숭모제가 열립니다.

쌍행수. ▲ 쌍행수. 맹사성이 후진과의 강학을 위해 심은 수령 600여년의 은행나무.

고택 앞마당에는 수목 600여년이 넘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쌍행수)가 있습니다. 한 그루는 높이 40m에 둘레 5.8m, 다른 한 그루는 높이 45m에 둘레 8.5m로 맹사성이 심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맹사성은 뜻을 같이하던 선비들과 강학하던 자리로 공자의 고사를 인용해 ‘행단’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쌍행수는 300여 년 전부터 원목 옆 사방으로 새로운 싹이 자라 지금과 같은 거목으로 자라게 됐다고 합니다. 1987년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가을이면 많은 은행이 열리는데 마을 입구부터 주변에서도 은행나무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맹씨행단 뒷동산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전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 맹씨행단 뒷동산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전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맹씨행단의
▲ 맹씨행단의 돌담은 옛스러운 사진을 찍기 좋은 포인트다. 

맹씨행단 입구. 현재 각종
▲ 맹씨행단 입구. 현재 보수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일시적으로 폐쇄될 경우 옆집을 통해 출입해야 한다.

검은소
▲ 검은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 맹씨행단 맞은편 기념관 입구에 있다.

조선 청백리의 대명사 고불 맹사성 기념관.
▲ 조선 청백리의 대명사 고불 맹사성 기념관.

뒷동산에는 느티나무, 전나무, 감나무 들이 넓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집 앞의 개울가에도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담장 안마당에는 채소밭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괴정에서 언덕 아래 들녘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성큼 다가온 가을햇살에 벼가 노랗게 익었을 때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코로나19로 심신이 피곤한 이때 휴일 오후 구괴정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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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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