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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파노라마 '고택'에서 세월과 대화하기

400여 년 세월의 수당고택과 200여 년의 이광임고택

2021.09.09(목) 09:53:41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수당고택 안채.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안채.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듯 세월은 시·공간의 파노라마 집을 남깁니다. 최신 트랜드의 신축건물도 있지만, 수백 년 세월을 지켜온 고택은 빛 바란 역사를 담아 후손에게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양반의 고장이라 불리는 충남에는 그래서 세월의 문화유산인 고택이 많습니다. 아산시 ‘외암마을’이 대표적인데요, 오늘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해 휴일 오후 잠시 시간을 내 호젓하게 찾을 수 있는 예산의 수당고택과 인근 이광임고택을 다녀왔습니다.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1.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2.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2.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3.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3.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안채 2.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안채 3.

수당고택(修堂古宅)은 1637년 신축돼 1846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집은 북인의 영수이자 3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손자로 수당의 10대조 한림공 이구의 부인인 숙부인 전주 이씨가 신축했다고 합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특이한 배치가 잘 보존돼 건축학적 가치가 큰 것은 물론 17세기 이후 다량의 고문서와 집안 유물들은 조선후기 사회경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학술적 가치를 평가받아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제281호)로 지정 보호되어 있습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ㅡ’자형 행랑채와 ‘ㅁ’자형을 이룹니다. 안채 중앙에는 넓은 대청 양편에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당에서 마루로 다가갈수록 석축기단이 높아지면서 대청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답답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전경.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편액 '평원정'.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편액 '평원정'.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편액 '홍엽산거'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전경.
▲ 충남 예산군 수당고택 사랑채 편액 '청좌산거'.

사랑채의 당호는 평원정(平遠停)입니다.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수평원경’에서 붙였다고 합니다. 편액은 아쉽게 6·25를 전후로 없어지고 현재는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편액 좌우에는 ‘청좌산거’ ‘홍엽산거’라는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건물구조는 ‘ㅡ’자형으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양편에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있다. 들어열개와 장지문을 달아 모임이 있을 경우 문을 거나 달아 올려 커다란 회의실 역할을 했다.
 
그런데 보통 반가의 구조는 행랑채가 사랑채를 호위하듯 배치하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안쪽에 배치하는데 수당고택은 안채가 사랑채 앞에 있습니다. 문간채는 팔작지붕 대신 북방기마민족의 특징인 우진각 지붕형태로 눈길을 끕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충남 예산군 수당기념관 전경. 코로나19로 현재 입장이 제한되고 있다.
▲ 충남 예산군 수당기념관 전경. 코로나19로 현재 입장이 제한되고 있다.
 
 수당고택이 더욱 특별한 것은 수당 이남규(1855~1907)의 선비정신과 충절 때문입니다. 1875년 과거에 급제한 이남규는 여러 주요관직을 거쳐 1900년 낙향, 더 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습니다.
 
그는 선비로서 상소를 통해 일제침략을 규탄합니다. 1893년 일본의 내정간섭을 규탄하는 ‘청절왜소’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규탄한 ‘청복왕후위호 토적복수소’ 1905년 을사늑약을 규탄하는 ‘청토적소’의 상소로 매국노처단과 일제와 결전을 주장했습니다.
 
의병활동에도 아들과 직접 참여하고 홍주 의병장 민종식을 은신시켜 1906년 공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07년 일본기마대에 서울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충남 아산군(현 아산시)에서 아들 이충구와 함께 일제에 피살된 애국지사입니다. 수당은 건국훈장 독립장에, 아들 이충구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손자 이승복은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 6·25 당시 원산전투에서 소위로 산화한 증손자 이장원은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가히 애국애족 집안이라 하겠습니다.

수암고택은 1~2시간 충분히 살필 수 있는데 약가 아쉬움이 있다면 승용차로 5분여 거리에 이광임고택(충남도유형문화재 제83호)이 있습니다. 조선 순조 때 선비로 1820년 그가 머물기 위해 지었던 저택입니다. 전체적으로 동향의 경사진 땅에 ‘一’자형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 그리고 ‘一’자형 행랑채가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전경 1.
▲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전경 1.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사랑채 전경 1.
▲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사랑채 전경 2.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사랑채 전경2.
▲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사랑채 전경 3.

안채와 사랑채 모두가 자연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후 납도리집 계통으로 꾸몄는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리고 행랑채만은 초가로 되어 있습니다. 경사진 대지에 층을 달리하는 기단과 마당을 배치한 후 여기에 안채와 사랑채를 들여 자연스러운 외부공간의 형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랑채 자리에 사랑채를 배치해 좋은 전망을 관망할 수 있도록 해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 고택 사랑채 마루에서 전면의 방산저수지를 바라보는 풍광이 아주 좋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수년전 문화재 털이범들이 고택에 침입해 문을 뜯어가고 제기 등을 훔쳐가는 바람에 지금은 문을 잠그고 있어 외부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안채 전경.
▲ 충남 예산군 이광임고택 안채 전경.

충남 예산군 이광임 고택 후원 전경.
▲ 충남 예산군 이광임 고택 후원 전경.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면서 사회적 피로가 더욱 커지는 이때 휴일 잠시 시간을 내 고택이 주는 고유함 멋과 정취를 느끼며 세월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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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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