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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베들레헴’ 당진 솔뫼성지

평화와 사색의 발걸음이 머무는 순교자의 고향

2019.10.07(월) 10:57:48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외삼문 형태의 솔뫼성지 입구. ▲외삼문 형태의 솔뫼성지 입구
 
조선후기 실학자 청담 이중환. 인문지리학 연구의 선구자였던 그는 저서 ‘택리지’에서 '내포는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평가했다. 비옥한 평야에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와 포구를 이뤄 물산이 풍부하고 드나드는 배들은 새로운 문물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중환의 평가처럼 내포는 자연스레 ‘서학’이 우리나라에 건네진 통로가 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지역 지식인(선비)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처럼 자발적인 진리탐구(서학)에 의해 신앙(천주교)을 받아들인 독특한 역사는 양반은 물론 중인, 서민 등 전 계층에서 자발적으로 천주교인으로 확산되었다.
 
그 내포에서도 중심에 위치한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국가사적 529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다. 증조부 김진후(비오, 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 등 4대에 걸쳐 순교자가 살던 ‘순교자의 고향’ 또는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고 있다. 
 
김대건은 1836년 신학생으로 마카오로 유학해 상해에서 신품을 받고 1845년 귀국해 선교활동 중 1846년 체포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신부가 된 지 1년1월 만에 순교한 것으로 1859년에는 가경자, 1925년 복자품, 1984년 성인품에 올려졌다.
 
‘솔뫼’는 '소나무가 뫼(산)를 이루고 있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솔뫼성지는 1만여 평(33,000㎡) 규모의 소나무 군락지로 수령 200년을 넘긴 노송만 80여 그루에 달하고, 일부는 300년을 넘겨 김대건 신부와 순교자들의 절개와 신앙심을 대변해 주고 있다. 2014년 5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사적지 제529호로 등록됐다.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1.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1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2.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2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3.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3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4.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4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5.
▲솔뫼성지 소나무군락지 산책길 5
 
주차장에서 성지 입구로 향하면 2014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당시 이곳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김대건신부상과 함께하고 있다. 외삼문 형태의 정문에는 못 박힌 예수의 발을 형상화했다.
 
솔뫼성지 입구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대건신부 조형물.
▲솔뫼성지 입구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대건신부 조형물
 
솔뫼성지 입구,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힌 발.
▲솔뫼성지 입구,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힌 발

이어 성지로 들어서 왼쪽에 원형공연장 형태의 ‘솔뫼아레나’가 보인다. ‘아레나’는 본래 ‘모래사장’을 의미하는데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의미한다. 주변에는 12사도상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각종 문화행사와 야외미사가 봉헌된다. 최대 3000명까지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솔뫼성지 아레나. ▲솔뫼성지 입구의 '솔뫼아레나'
 
솔뫼아레나 건너편은 김대건 기념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그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선으로 향하면서 승선했던 라파엘(하느님이 보호하신다)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져 망망대해를 헤매던 라파엘호가 성모마리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음을 형상화했다.
 
기념성당은 순교를 의미하는 붉은색의 소재를 외관에 사용했고, 양편 스테인드글라스는 강경 황산포의 해도를 표현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한국교회의 박해, 순교의 과정이 전시되고 영상으로도 시청할 수 있다.
 
솔뫼성지. 성당
▲솔뫼성지. 김대건 기념성당 전경
 
본격적인 솔뫼성지 순례는 소나무 사이로 ‘십자가의 길’에서 시작된다. 십자가의 길은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 혹은 '비아 크로치스'라고 하는데 슬픔의 길, 고난의 길, 고통의 길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을 기억하며 행하는 기도다.
 
이곳에는 2가지 형태로 하나는 예수님의 손을 주제로 모자이크했다. 다른 하나는 예수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바위무덤에 묻힐 때까지의 과정이 14개 인체 크기의 조형물이 설치돼 순례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기도장소
 
솔뫼정원
▲십자가의길 1~4 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십자가의길 5~8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십자가의길 5~8 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십자가의길 9~11장면. 왼쪽부터.
▲십자가의길 9~11 장면, 왼쪽부터
 
십자가의길 .
▲십자가의길 12~14장면. 왼쪽부터 시계방향. 
 
숲을 산책하다 보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을 만나게 된다. 신부님 옆에는 순교복자비와 성인비가 모셔져 있다. 1946년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100주년을 맞아 성지가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성역화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솔뫼성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솔뫼성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
 
솔뫼를 벗어나면 김대건 생가(충남도문화재 제146호)와 마주한다. 여러 고증과 기왓장 발굴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돼 성체조배실로 개방하고 있다.  
 
솔뫼성지 성 김대건 아드레아 신부의 생가.
▲솔뫼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가
 
솔뫼성지는 순교(殉敎)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순교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당하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증인’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어떤 진리를 위해 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순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요소가 포함돼야 하는데, 첫째가 실제 죽음, 둘째가 그 죽음이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한 것, 셋째가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한 자발적 수용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1세기에 걸친 박해역사를 갖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등 ‘4대 박해’ 모두가 국가명령으로 전국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냈다. 박해의 원인은 ‘사상과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신앙은 조선왕조의 전근대적 사상통제와 신분제적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이고, 인간의 양심과 인격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다. 당시 사회를 이끌던 성리학을 부인하는 새로운 가르침은 양반의 신분적 특권을 부인하고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심지어 제사마저 일종의 미신 행위로 간주해 전면 부정했다.

기존제도와 질서에 대한 전면적 거부는 국가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여기에 부패 관리는 천주교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집안 형제와 친척, 이웃들은 연좌제로부터 자신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박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박해 시대 처형된 신자 가운데 신앙보다 현실 정치문제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많은 이유다. 물론 박해의 원인에는 당시 교회의 책임도 있다. 18세기 당시 선교방식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너무도 인색하고 편협한 나머지 미풍양속인 조상의 제사마저 미신으로 여기는 등 동양의 기존 문화를 전반적으로 부정했다.
 
이제 솔뫼성지는 천주교 복합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탄생된다. 당진시가 이곳에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 5월까지 2만154㎡의 터에 건물면적 3026㎡에 130억 원을 들여 9145㎡ 규모의 광장과 화랑, 대강당, 예술공연장, 전시관 등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청명한 하늘이 더욱 높아지는 가을을 맞아 솔뫼성지를 찾아 사색의 발걸음을 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에 충분할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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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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