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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가득하고 웅장했던 사찰, 보령 성주사지

2015.02.07(토) 10:20:43goood33(goood33@hanmail.net)



오랜만에 보령여행을 다녀오면서 성주사지를 방문했는데 성주사지 관광안내소를 지나서 성주사지 안내도에 도착하니까 처음에는 성주사지가 황량해 보였지만 보물도 많고 문화재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서 당시 사찰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성주사지 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에 2차에 걸쳐 크게 고쳐 지었고, 조선시대에도 중창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절이 규모가 크게 줄어 들었다. 현재의 중심 사역 이외에도 주변에는 많은 건물자리가 있는데 주위의 아름다운 산세와 어울려 웅장했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성주사지 안내도

▲ 성주사지 안내도


먼저 성주사지 안내도를 보고 문화유적들을 살펴 보았는데 설명서가 잘 되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성주사지는 사적 제307호이며 성주사는 통일신라 말에 유행했던 선종 사찰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이다.
백제시대에는 전쟁에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오합사라는 절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에 김인문이 이 지역을 봉지로 받은 이후 신라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보령성주사지 경내에는 최치원이 지은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를 비롯하여 오층석탑이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금당 뒤편에는 3기의 삼층석탑 중 2기의 보물과 1기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으며, 석등도 있다.



 



성주사지 주변에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마을도 살기 좋게 모여 살고 있다.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제19호)

▲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제19호)



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제19호)으로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만든 건조물인데, 후에 절 배치의 필요에 의해 상징적으로 만들어 졌다.

금당지 앞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불탑으로 볼 수도 있으며 보물은 1963년 1월 21일에 지정되었으며 신라 말에서 고려로 이행되어 가는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주사지 석등(유형문화재 제33호)

▲ 성주사지 석등(유형문화재 제33호)



 

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

▲ 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


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자료 제140호)으로 금당인 대웅전에 오르는 돌로 된 계단이다.


 


성주사지 석계단을 올라 오며는 3개의 석탑이 서로 멋을 자랑하면서 우뚝 솟아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성주사지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제일로 아름답고 웅장하게 보인다.


 

성주사지 서 3층석탑(보물제47호)

▲ 성주사지 서 3층석탑(보물제47호)


성주사지 서 3층석탑(보물제47호)은 성주사의 금당지 뒷편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석탑 가운데 서쪽에 있는 3층석탑이다. 탑 주위에 장식물을 달았던 흔적이 많이 발견되어 다른 탑에 비하여 화려한 장식을 한 것 같다.


 

성주사지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 성주사지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성주사지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은 성주사의 금당지 뒷편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석탑 가운데 중앙에 있는 3층석탑이며, 왼쪽과 오른쪽의 탑들과 같은 양식이지만 몸돌 조각이 다른 것에 비하여 화려하다.


 

성주사지 동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26호)

▲ 성주사지 동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26호)


성주사지 동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26호)은 성주사의 금당지 뒷편에 동쪽과 서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석탑 가운데 동쪽에 있는 3층석탑이다. 이 탑은 부도로 추정되어 오다가 성주사사적기에 의해서 사리탑으로 확인되었고 발굴조사 걸과 사지 내의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으로 밝혀졌다.


 

성주사지 석불입상(지방문화재 제373호)

▲ 성주사지 석불입상(지방문화재 제373호)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는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높이가 4.55m이며 화강암 및 대리석으로 통일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만들었다. 이 비석은 성주산문을 처음으로 창설한 낭혜 화상 무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성주사지 가는 길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성주사지 전화 : 041) 93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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