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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지극한 자식사랑이 낳은 해프닝

2012.09.05(수) 09:31:33천리포지킴이(bestsj0327@naver.com)

누구나 수목원이라 하면, 푸른 숲과 함께 싱그런 풀내음과 향긋한 꽃내음을 연상한다. 요즘같은 날씨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라도 불어와 주면 이보다 좋은 호사가 없다. 풀내음, 꽃내음을 맡노라면 콧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마음도 살랑인다.

 

하지만, 요즘 천리포수목원에는 오래된 치즈 냄새같기도하고 곰팡이 냄새 같기도하고 뭐라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풍겨나오는 곳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수목원에서 생을 마쳐 죽는 식물들 이야기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냄새의 주인공은 바로 펜스테몬(penstemon)이다.

 

올 여름에 피었던 펜스테몬 (Penstemon cordifolium) 종으로 미쳐 찍어 놓은 사진이 없어 이해를 돕기위해 최창호 식물팀장님께 도움을 받았다

▲올 여름에 피었던 펜스테몬 (Penstemon cordifolium) 종으로 미쳐 찍어 놓은 사진이 없어 이해를 돕기위해 최창호 식물팀장님께 도움을 받았다

 

펜스테몬이라 하면 생소하게 들리기도하는데 특별한 주의없이도 잘자라 수목원이나 기타 정원에서 한 두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 북미 서부가 원산으로 대략 250종이 분포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는 펜스테몬종은 크지 않은 키에 7~8월 여름동안 연보라, 연분홍색 등을 띤 나팔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다.

 

펜스테몬을 보면서 문득, 식물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생각해본다. 식물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때라 말하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나서 아름다운 후손을 기약하며 결실을 맺는 때가 아닌가 싶다. 식물은 동물과 다르게 이동을 돕는 다리가 없으며, 설사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능동적인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관리하고 보호한다. 펜스테몬이 이 계절 지독한 냄새를 피우는 이유도 바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아니 자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구사한다.

 

현재 종자수집을 위해 열매가 달린 펜스테몬을 채집하여 말리고 있다.

▲현재 종자수집을 위해 열매가 달린 펜스테몬을 채집하여 말리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식물이 어디 펜스테몬 뿐이랴.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은행나무도 알고 보면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은행나무의 열매

▲은행나무의 열매

 

은행나무의 열매

▲은행나무의 열매

 

매년 가을이 되면 길가나 학교 교정 화단 근처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대표적 식물이 은행나무이다. 가을이 되면 살구색을 띤 동그란 은행의 열매가 탐스럽게 열리는데, 이 열매에서 이름도 유래했다. 속이 은빛같은 은색을 띠어 은(銀), 겉이 살구를 닮아 살구 행(杏)을 써 은행이라 불려진다. 이 은행도 독특한 냄새를 만들어 쉽게 손을 타지 않게 함으로써 자손의 번식을 돕는다. 은행나무가 이계절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해프닝은 지극한 자식사랑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주변에 은행나무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어도 지독한 냄새 때문에 딱딱한 껍질 안의 쪼득한 열매를 탐하는 일에는 일말의 용기가 필요하니깐 말이다.

 

이제부터 수목원을 거닐거나 주변에서 마주치는 나무들의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한번쯤은 의심해봐도 좋을듯하다. 과연 무엇때문에 이러한 냄새를 풍기는 것인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면 생각지 못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가을의 문턱에서 가냘픈 풀이든 우직한 나무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다시끔 생각나게 한다. 오늘은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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