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조선 600년 최고 충절의 선비를 꼽는다면?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매죽헌 ‘성삼문’

2020.01.12(일) 18:13:59장군바라기(hao0219@hanmail.net)

성삼문
▲성삼문 등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노은단 
 
조선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충신을 꼽는다면? 많은 분들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버리면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킨 사육신(死六臣)의 대표적 인물 매죽헌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을 떠올리는데 주저함이 없을 듯합니다.

신념을 지키는데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선비의 의리를 지킨 성삼문. 그는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돼 자신과 부친, 형제,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멸문’의 참화를 입었습니다.
 
충절사에 모셔진 성삼문 영정.
▲충문사에 모셔진 매죽헌 성삼문 영정 1
 
충문사에 모셔진 매죽헌 성삼문 영정 2.
▲충문사에 모셔진 매죽헌 성삼문 영정 2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1676년(숙종2년) 호서의 유림들이 성삼문의 충절을 받들어 옛집인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 사당을 세우고 조정에 사육신을 같이 모실 것을 청해 ‘녹운서원’이 하사됐습니다. 서원은 뒤에 노은서원으로 개칭됐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폐원됩니다.
 
1691년(숙종 17년)에는 이전의 관직이 다시 제수되고 1758년(영종 34년) 이조판서에 추증돼 ‘충문(忠文)’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지금껏 충신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성삼문은 노은리 외가에서 출생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는 세 번의 물음이 들려 이름을 삼문(三問)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호 매죽헌(梅竹軒)은 매화와 대나무를 닮은 강직한 군자의 기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원급제 후 집현전 학사로 뽑힌 그는 신숙주와 요동에 귀향 온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을 13차례 왕래하며 음운을 배워오는 등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헌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생가 근처에 세워진 성삼문유허비(충남 문화재자료 제164호)는 1668년 홍주관찰사 민유중이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고 송시열이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후면에는 인왕산에서 발견된 성삼문의 신주가 유허지로 봉안되는 과정과 사당의 건립, 사육신 위패의 봉안내용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성삼문 유허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64호) 1 .
▲성삼문 유허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1
 
성삼문 유허비 2 .
▲성삼문 유허비 2
 
유허비 뒤로는 성삼문의 유허지(충남 기념물 제5호)가 있고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노은단’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노은단은 노산군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으로, 노산군은 폐위된 ‘단종’의 강등된 시호입니다. 입구에는 성삼문의 업적과 그가 처형되기 직전에 지었다는 ‘단심가’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노은단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노은서원이 헐리자 지역유생들이 사육신을 별도로 모신 곳입니다.
 
노은단
▲노은서원 철폐로 사육신 추모를 위해 조성된 '노은단'
 
노은단
▲노산군(단종)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의 '노은단'

 단심가        

 이 몸이 주거가셔 무엇시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야 이셔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성삼문
 
노은단 입구의 단심가
▲노은단 입구의 단심가와 성삼문사적기 
 
노은단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는 성삼문을 기리는 사당 ‘충문사’가 있습니다. 충절문을 통해 충문사에 들어서면 성삼문의 영정과 제단이 마련돼 해마다 10월 20일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매죽헌 성삼문 사당
▲매죽헌 성삼문 사당 충문사 1 
 
매죽헌 성삼문 사당 2.
▲매죽헌 성삼문 사당 충문사 2
 
성삼문 유허비 문화해설사 .
▲성삼문 유허비 문화해설사
 
인근에는 성삼문의 외손 엄찬(嚴燦)의 멋스러운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31호)이 있습니다. 원래는 문간채와 안채가 갖춰진 양반집이었지만, 지금은 문간채가 없어지고 안채만 남아있는 ‘ㅁ’자형 집입니다. 대지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집을 지었습니다. 안채의 남쪽에는 대문이 있고 동쪽에 본채를 두었습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입니다. 본채 가운데 2칸에 대청마루를 깔았고, 본채를 중심으로 남·서·북 세 방향으로 건물을 이어 달았습니다. 엄찬고택은 별도의 글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홍성 엄찬고택 전경1.
▲홍성 엄찬고택 전경 1
 
홍성군에서도 매년 9월이면 ‘홍성역사인물축제’를 통해 불의에 항거하여 굳건한 절개를 지킨 성삼문의 일대기를 즐기며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홍성 인근의 여행길에 나섰다면 백설에 독야청청하는 성삼문의 기개를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쓰기
댓글 작성

*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최종 수정일 : 2023-12-15
  • 게재된 내용 및 운영에 대한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정보관리 담당부서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이 페이지에 대한 저작권은 충청남도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