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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처럼 펼쳐진 풍경, 화장실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2019.12.01(일) 20:54:17황토(enikesa@hanmail.net)

햇빛이 따스한 오후의 저수지
▲햇빛이 따스한 오후의 저수지

절정의 단풍이 막을 내리고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의 마음을 읽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바람이 불자 단풍이 무수히 떨어진다. 저렇듯 꽃보다 화려한 단풍을 떨어뜨리는 자연의 순리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쪽배가 보이는 풍경
▲쪽배가 보이는 풍경

저수지를 한 팔에 안고 있는 계룡산, 온전히 계룡산만을 향해 존재하는 저수지. 계룡산 자락이 펼쳐진 갑사 방향의 계룡저수지에서 초겨울 풍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풍경’이다. 알밤 모양을 상징하는 취수탑과 산책로가 있는 곳이 아니어서, 이곳은 눈에 띄는 데크와 저수지만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지난 4월에는 취수탑과 산책로를 돌며 인적이 드문 진달래꽃길을 걷기도 했다. 주변에 봄이 무르익으며, 산그늘이 있는 곳은 그제서야 겨우 봄기운이 들어섰다. 잠에서 갓 깨어 하품하듯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길은 정말이지 아무도 몰랐으면 싶을 정도로 소박하고 어여뻤다. 문득 '아무도 모르라고'라는 가곡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떡갈나무 숲 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이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 오지요.

그리고 지금 다시 와본 계룡저수지(갑사 방향)에서 시간의 빠른 흐름을 실감한다.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눈앞에서 확인할 때에야 아차, 싶은 순간들을 아쉬워한다.

봄에는 쪽배 옆에 낚시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던 설치물이 있었다. 쓰레기를 버려도 그다지 캥기지 않을 정도로 잡다한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홀로 있는 쪽배가 운치를 더한다. 풀밭이라고 여겼던 곳에는 갈대밭이 무리지어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얗게 흔들렸다.
 

 
살짝 기울어진 화장실은 살짝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더 그렇다.
▲살짝 기울어진 화장실은 가벼운 공포감마저 느끼게 하고, 안을 들여다보면 더 그렇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들어오는 장면 하나, 화장실이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요의가 왔다. 데크를 걷기 전에 화장실을 들러야겠다 싶었다. 화장실 가까이에 서는 순간, 반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자줏빛 변기가 왠지 꺼림칙했다. 문은 그 상태에서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위쪽 지붕에 눌려 문이 꽉 껴 있는 상태였다. 들어간다 해도 나올 때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생각만으로 왠지 공포감마저 느껴졌다. 
 
화장실은 남자와 여자 양쪽으로 구분되었고, 그 가운데 남성 전용 소변기가 있다. 문 바깥에 붙여진 스티커엔 ‘생맥주 피자’라는 글이 보였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하기도 했었던 것일까. 화장실 사용은 아예 포기하기로 했다. 그림처럼 펼쳐진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 화장실까지 ‘아름다웠다’면 모두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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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데크를 걷던 시간은 다시 추억으로 돌아간다
 
눈이 내리고 쌓이면 또 다른 장면을 연출할 계룡저수지. 단풍 절정이 지난 계룡산 자락의 빛깔은 카키색으로 다소 진중하다. 밝고 화려할 때가 있었으니 묵직하고 과묵할 때가 있어야 함을 말없이 알려준다. 저수지를 벗어나자 참았던 요의가 다시 느껴진다. 다시 이곳을 찾을 땐 달라진 화장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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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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