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지역신문뉴스

지역신문뉴스

충남넷 미디어 > 생생뉴스 > 지역신문뉴스

70대 노부부의 잔잔한 실천이 일군 기적

볼품없던 실개천이 화사한 꽃밭이 되기까지 <br>7년 전 가을, 코스모스 씨앗 심은 게 계기

2024.05.07(화) 15:51:01무한정보신문(fuco21@daum.net)

이선영·곽노분 부부가 7년째 가꾸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앞 실개천 꽃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선영·곽노분 부부가 7년째 가꾸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앞 실개천 꽃밭에서 잡초를 뽑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 앞 산책로에 핀 꽃들을 돌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70대 노부부가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이선영(71)·곽노분(70) 부부는 오늘 아침에도 꽃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성정이 서글서글한 노부부의 특별한 관리를 받는 이곳은 예산군 예산읍 발연교부터 아파트 상가동까지 이어지는 150여미터 구간으로, 폭 10여미터의 시냇물이 흐르는 실개천 옆으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주변 우방·계룡 아파트 주민들이 산책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부부에게 지금은 일상이 되다시피한 산책로 주변 꽃 가꾸기는 어느덧 햇수로 7년째 접어들었다. 부부는 실개천 주변의 무성했던 잡초를 뽑은 자리에 꽃을 심고 가꾼 결과, 산책로는 발연리 일원 주민들에게 계절별로 피는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화원으로 변모했다. 

사정을 잘 몰랐던 어떤 주민은 한동안 ‘당연히 예산군에서 관리하는 줄’로만 알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부부가 자신들의 산책로 꽃심기 활동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실개천 주변 잡초를 제거하고 꽃을 심어 꽃밭을 가꾸는 일이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심지어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님을 강조한다.

그저 “마치 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듯, 반려 식물이 잘 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꽃이 잘 클 수 있도록 오가며 잡초가 보일 때마다 뽑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볼품없던 실개천 주변이 꽃밭이 되면서, 주민들은 계절별로 형형색색의 꽃들을 감상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 이선영
볼품없던 실개천 주변이 꽃밭이 되면서, 주민들은 계절별로 형형색색의 꽃들을 감상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 이선영

부부가 꽃을 심고 가꾸는 동기와 무관하게, 잡초에 풀밭으로 무성했던 실개천 주변이 화사한 꽃밭으로 바뀌자 우방아파트 주민들과 계룡아파트 주민들은 생각지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됐다. 이 또한 부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부부가 소박한 마음으로 실행한 꽃밭 가꾸기가 아파트 주변 공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휴식을 즐기려 산책로를 찾는 동네 주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신암 계촌리가 고향인 남편 이선영씨는 신암초등학교와 예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던 중, 건강 상태가 안 좋았던 부친을 도와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친이 작고한 뒤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한국타이어 예산대리점을 30여년만에 정리할 무렵인 2017년에, 현재 부부가 거주하고 있는 우방아파트로 이사왔다.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남편과 함께 은퇴 뒤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준비하던 아내의 손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집안 정리였다.

유난히 꽃을 사랑했던 아내는 아파트 집안에서 키우던 화분에 대한 미련도 털어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새로운 삶의 여정을 산뜻하게 시작하기 위한 분위기 일신이 필요한 터였다. 어쩌면 아내에게 꽃 화분과의 작별이 가장 힘든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아내 곽노분씨는 “집안에 있던 화분 관리가 번거롭기도 했고 남편 은퇴 시점에 키우던 꽃, 식물들을 싹 다 정리하고 있는데, 마침 지인에게 잔뜩 받아놓은 코스모스 씨앗이 있었다”며 “생각 끝에 아파트 앞 산책로 주변에 꽃을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현역에서 은퇴한 남편은 당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예산에서 돈을 벌었으니 돈을 써도 예산에서 돈을 쓰고 싶었고, 예산을 위해 뭔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아내가 생각해도 동네 산책로 꽃밭 조성은 고향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는 남편의 뜻과도 잘 부합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잡풀로 무성했던 산책로가 어느 순간 화사한 꽃밭으로 변화된 모습을 신기한 듯 살펴보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아파트 주민들이 잡풀로 무성했던 산책로가 어느 순간 화사한 꽃밭으로 변화된 모습을 신기한 듯 살펴보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꽃은 지인들로부터 제공받거나 사비를 들여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부부가 심은 꽃이 △금계국 △꽃잔디 △달맞이꽃 △낮달맞이꽃 △샤스타데이지 △분꽃 △봉숭아 △나팔꽃 △하얀민들레 등 21종에 달한다.

심은 꽃이 잘 클 수 있도록 퇴비·질소비료 등을 사다 뿌리고, 거의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등 꽃밭을 관리하는 일이 부부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3년 전엔 아내가 우거진 잡풀 밑에 바위가 있는지 가늠이 안돼 발을 헛디디며 허리를 다치는 일도 겪었지만,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보니 그런 사고(?)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슬하에 딸 셋 모두 출가했는데,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자녀들로부터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듣지만 아내 곽씨는 되레 “너희들 나이 때는 잘 모른다. 우리 나이 돼 봐라. 꽃을 심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로 응수한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여름철에 풀뽑는 일이 70대 부부에게 벅찬 것은 사실이다. 특히 여름철에 뽑고 돌아서면 이내 다시 돋아나 있는 풀을 뽑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부부가 시작한 선한 영향력에 우방아파트 부녀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 곽씨에 따르면 부녀회 차원에서 앞으로 잡초 제거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

언제까지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무릎이 고장나기 전까지”라고 대답한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파트 단지 앞 평범한 실개천을 꽃밭으로 바꾸겠다는 것을…. 혹여 그런 생각을 했을지라도 누가 실천에 옮길 수 있었을까?

만일 “부부에게 어떤 사정이 생겨 꽃밭을 가꿀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땐 어쩌지?”라는 걱정은 접어둬도 괜찮을 것 같다.
 

이미 부녀회가 나서기 시작했다. 수많은 주민들이 어느 70대 노부부의 작은 실천이 빚어낸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고, 볼품없던 실개천이 어떻게 아름다운 화원으로 변모하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제2·제3의 ‘70대 부부’가 나서지 않을까?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