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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보물이 숨어 있었네

<충남 사회적기업 창업스토리>충남 서천군 전통예술단 '혼'

2017.11.16(목) 07:46:21솔이네(siseng@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전통음악에 빠져 살던 청춘들이 충남 서천군과 인연을 맺은 지 10여 년을 훌쩍 넘었다. 이들은 서천에 모여 곳곳을 쏘다녔다.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닷가, 당시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되지도 않았던 한산모시관, 이동백 소리관. 전통예술 하는 청춘들에게 서천은 놀이터였다. 당제가 열리면 ‘무당선생님’까지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서천은 지역 정서도 맞고, 해안에 평야에 곳곳에 문화콘텐츠가 많아서 흥미를 많이 느꼈어요. 전통문화 콘텐츠를 창작하고 개발할 소스를 찾기 어려운데, 서천은 숨은 이야기 거리가 널려 있는 곳이죠.”
 
김대기 전통예술단 ‘혼’ 대표가 말했다. 서천에서 ‘놀러’다닐 때만해도 전통문화 콘텐츠 창 작 열망이 가득한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타 지역에서 전통타악 공연을 하던 그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후배에게 말했다.  
 

지역에 보물이 숨어 있었네 사진


  
“전통타악과 한국무용이 만나서 시골로 들어가 우리만의 공연단을 꾸리자.”
 
이 청춘들은 서천에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서천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전통예술의 소재는 도시보다 시골에 보전되어 있지 않을까’ 어느 작은 작은 찻집에 앉아 꿈들을 쏟아냈다. 
 
  “그때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백유영 ‘혼’ 예술감독은 서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을 소재로 창작극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 나눌 때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때 만해도 꿈 많던 이십대였다. 서천이 고향인 백 감독은 당시 익산에서 시립무용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익산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부러웠어요. 익산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 지역작품을 만들어야 해.’ ‘익산은 이래.’ 그런 단합력이 있죠. 익산에서 활동하면서 소외된 느낌이 들었는데, 내 고향에서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대표님과 작업하면서 ‘익산에는 예술가도 많고 지역 작품이 많이 발굴되어 있으니까 서천에서 창작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지역에 보물이 숨어 있었네 사진



시골 텃새가 만만치 않았다. 전통예술 한다는 젊은이들을 쉽게 받아주질 않았다. 무작정 마을로 들어가서 어르신과 아이들을 만났다. 충남 요양시설 중에 안 돌아다닌 데가 없다. 서천의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청소년예술단을 만들어 무료로 가르쳤다. 그 아이들이 각종 대회에 입상하면서 지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님 중심으로 후원그룹이 생겨났다.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버틸까’, ‘물만 흐리지 않을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지역의 어르신들도 ‘혼’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자 서울, 군산에 있던 선후배 세 명이 더 결합했다. 청년 다섯 명이 모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두려울 게 없는 나이다. 전통문화가 놀이이자 공부인 청춘들이었다. 막무가내로 사무실을 내고 지역 조사를 시작했다. 한산모시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향토 사학자를 찾아가 고증하고 사료를 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 『모시꽃 피다』는 충남을 넘어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항상 서천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곳에서 놀아서 정보가 많았죠. 준비가 다 된 상태였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허겁지겁 준비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부터 인적자원까지 다 있었죠. 친구, 선후배, 언니, 오빠 동생들이 무조건 한다는 사람들이어서 문제가 안 됐어요. 『모시꽃 피다』가 흥행하면서 우린 너무 행복했죠.” 
 
 ‘혼’은 서천 지역의 소재로 창작극을 잇달아 내놨다.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찾아가 조사하면서 『서천 공작부채춤』을 창작했다. 사장되어 가던 문화재를 발굴해 자신만의 춤을 만들었다. 충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수자가 없자 ‘혼’ 단원들이 나서서 배우고 있다. 2012년 초연한 『신비의 책 바이블로드』는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지인 서천군 마량진 포구의 역사를 무용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들에게 서천은 보석 같은 전통문화 소재로 가득 찬 ‘블루오션’이었다. 그들은 숨어 있는 지역 이야기를 채굴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전통문화 콘텐츠를 창작할 이야기 거리를 찾기란 쉽지 않아요. 기존에 무대에 오른 극은 모두 저작권자가 따로 있죠. 우리가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키워내고 대물림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서천만 그러겠어요? 청양도, 보령에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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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민간단체  ‘혼’은 2013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예술인재를 키우고 문화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리는 전통문화콘텐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예술단체를 기업으로 연관 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윤리경영을 내세운 사회적기업과는 어울린다. 수익보다 가치에 더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문화예술 분야는 윤리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모든 생각을 모으고 공유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공동 작업을 했을 때 시너지가 더 큰 것 같아요. 우리가 인간문화재 같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이끌고 갈 수 없죠. 한번 인연을 맺으면 ‘나가라 마라’ 하지도 않아요. 해고가 없어요. 단원 한 명도 기존 멤버들 전원동의로 받으면서 12명까지 왔어요.”
 
전국 유명한 예술단들이 이렇게 민주적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도제방식으로 진행되거나 수익을 위해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는 곳도 많다. 
 
 “대부분 예술단의 우선순위는 작품이죠. 작품의 흥행을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도 있어요. 수익이 나야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서천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라는 게 대표님의 지론이에요. 막내 단원이 낸 의견이 틀린 것 같아도 시행착오를 겪게 해요. 그렇게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기다려주는 그런 리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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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술 감독은 김 대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흔히 도제방식을 상상하면 제자는 빗자루 질부터 배우는 걸 상상한다. 여기서는 대표가 화장실 청소며 쓰레기 처리를 먼저 한다. 백 감독은 “선배들이 먼저 솔선수범하면서 궂은일은 한다”고 말했다.
 
흔히 기업에서 직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이라는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받는 만큼 일하는 수동적인 자세에 빠지기 쉽다. 일과 활동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면 기업문화는 달라진다. 자발성도 거기서 나온다. ‘혼’과 같이 창의력이 요구되는 문화콘텐츠기업에서 자발성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리더 한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막내 단원까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작품은 더 나아진다. 일종의 집단지성이다. ‘혼’의 공동창작 밑바탕에는 수익보다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공동체문화가 깔려 있다. 
 
문화예술인은 배고픈 직업이다. ‘혼’ 역시 단원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보장하지만 12명의 단원을 책임지기는 여전히 벅차다. 급여가 부족할 땐 막내단원부터 챙기고 선배인 간부들이 감내한다. 김 대표의 다음 과제는 자립이다. 
 
“전국의 문화단체 중에 그나마 나은 수준이에요. 시골에서 자립해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단체의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지역에서 문화 관련 다양한 일을 맡겨준다면 충분히 자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나마 나은 수준’이 아니라 다른 문화단체가 보기에 ‘혼’은 부러운 수준이다. 숲 속에 자리 잡은 사무실과 연습실, 야외공연장으로도 사용되는 푸른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 이 공간을 법인 자산으로 마련했다. 도시 전통문화단체들의 연습실은 대부분 지하실에 있다. 건물 임대료도 만만치 않지만 지상 연습실에서 꽹과리라도 친다면 민원이 폭주할 테다. ‘혼’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두드리고 춤을 춘다. 도시에서는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시골에서는 자연의 소리와 어울린다. 풍물은 확 트인 야외에서 쳐야 제 맛이다. 그렇게 태어난 게 풍물놀이고 전통타악이다.  
 
“도시에는 공연이 많으니까 돈벌이는 되겠죠. 하지만 삶의 질은 여기가 훨씬 나아요. 후배들에게 도시에서 돈만 다박다박 받지 말고 시골에 내려와 함께 해보자고 해도 잘 안 먹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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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의 자립 기반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전문문화예술단체로 지정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국내외에서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몽골국립예술단과 교류를 맺어  몽골을 오가며 함께 무대에 오른다. 서천군이라는 지역의 이야기로 해외까지 전하는 일이다.  

“충남의 작은 군인 서천의 예술단이 몽골의 국립기관과 교류를 지속하기에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도 공연 콘텐츠만 있으면 예술가들끼리는 문제가 안 됩니다. 3년 동안 교류하면서 우리 ‘혼’도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됐죠. 성공적으로 교류하는데 서천 지역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지역기반을 다지기 위해 학생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전통예술을 가르치며 100인 예술단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자발적인 무료교육을 받은 주민들은 ‘혼’이 무대에 올린 공연 티켓을 사준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막바지 장맛비가 내렸다. 연습실에서 전통예술을 꿈꾸는 학생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무용복을 입은 맵시가 다부졌다. 전날까지 공연준비로 강행했던 단원들도 휴가 기간이었지만 연습실에 나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정말 즐기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무료로 진행되는 교육이다. 

“전통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에요. 앞으로 우리 단원으로 들어올 친구들인데 돈을 받을 수는 없죠. 열심히 커가는 인재들이 다시 ‘혼’으로 돌아온다면, 그 세대에는 문화예술활동을 하면서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전통예술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시골로 들어가 지역이야기로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전통예술단 ‘혼’은 앞으로 커갈 어린 인재와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터를 다져가고 있다.       


충남 서천군 마산면 군간길 82 | 010-5672-3040

* 이 글은 충남시민재단이 발행한 '2017충남 사회적경제 윤리경영 사례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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