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역사

어금니 바위

충남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산 52

2024.02.29(목) 15:59:27 | 춘당 (이메일주소:yosaebi45@daum.net
               	yosaebi45@daum.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영인산의 동쪽 끝자락 자그마한 능선에
사람의 어금니를 닮았다는 커다란 바위가
염치와 영인을 넘나드는 아산고개를 내려다 보며 불끈 솟아 있는데
이 바위가 현재의 아산시(牙山市) 지명이 됐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로
세상에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꽤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어금니바위 1
어금니 바위의 전설

염치면 서원리(원골)의 어금니 바위로 들어서는 능선 초입에는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사찰로 추정되는 수암사라는 그리 크지 않은 절이 있고
절 경내로 들어서면 원광전이라는 본전과 산신각을 에두르고 있는 바위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 바위들이 마치 사람 입안의 어금니처럼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신비한 느낌을 준다
허나 능선 위에 정식 명칭을 가진 어금니 바위가 따로 있고 보면
이 바위들을 어금니 바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실제적인 '어금니'와 더 많이 닮은 이 바위들이 실물이 아닐까 하여
거주하는 스님에게 물어봐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대답만 듣게 되었다.

어금니바위 2
수암사 일주문(어금니바위수암사)

범종각과 종무소 사이로 들어가면 이 절의 본전인 원광전(圓光殿)과 맞닥뜨린다.

어금니바위 3

어금니바위 4
원광전

원광전과 산신각 사이에는 약사여래 그림이 그려진 각황보궁(覺皇寶宮)이 자리하고 있는데
법당같지는 않았으나 직접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어금니바위 5
각황보궁(覺皇寶宮)

스님들이 주로 예불을 하는 법당은 본전이 아닌 바위 아래에 세워진 산신각이었는데
필자가 방문한 이 날도 스님 두 분이 이 곳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어금니바위 6
산신각

무심히 보면 좀 괴이하게 생긴 바윗덩어리이지만
어금니를 연상하고 살펴 보면 꽤 비슷한 모양새의 어금니를 볼 수 있다.

어금니바위 7
어금니를 닮은 바위

어금니바위 8
산신각과 어금니 바위

절의 뒷마당에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조립식 요사채와
잔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절(卍)자 표시 글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더 윗쪽으로는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어 대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 발길을 하지 않았다.

어금니바위 9
   卍
 
돌 글자 뒤에 홀로 세워진 자연석 바위도 이빨을 닮았나?

어금니바위 10 
남향을 하고 있는 절의 일주문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돌탑과 미륵불이 어지러히(?) 세워져 있고
주지 스님의 취향인지 아기자기한 시설물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눈요깃감을 제공한다

어금니바위 11
  일주문 주변

어금니바위 12
미륵불

어금니바위 13
   오층석탑

어금니바위 14
수암사창건주법철소차공덕비

수암사를 물러나와 절의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게 되면 마치 담벼락같은 바위 지대와 키 큰 소나무 밑을 지나가게 된다.

어금니바위 15
능선에서 내려다 본 수암사

어금니바위 16
솔길

어금니바위 17

어금니바위 18
절을 감싸고 있는 담장같은 바위들

싱그러운 솔 바람 속에 단아하면서도 친근한 풍경을 갖춘 수암사는 양지 바른 공간을 차지한 건물들이 위압적이거나 복잡하지 않고 발밑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까지 열려 여느 절과는 달리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어금니바위 19
수암사

어금니바위 20卍자 돌담으로 장식한 뒷마당

목탁 소리가 울려퍼지는 수암사를 발밑에 두고
소나무와 차돌바위 구경을 하며
10여 분 쯤 능선을 따라가면 잡목에 가린 웅장한 바윗덩이가 앞을 막아선다
이 바위가 바로 아산의 지명을 낳게 했다는 정식 어금니 바위로 
눈으로는 전모를 다 들여다 볼 수 없으나
대충 규모만으로도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걸 느낄 수 있고
바위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등날에 올라서면 아산의 전설과 마주할 수 있다.

어금니바위 21
어금니 바위 초입

어금니바위 22
어금니 바위 옆 모습

어금니바위 23
어금니 바위(정면)

<어금니 바위의 전설〉
이 곳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염치읍 송곡리에 돈 많은 욕심쟁이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은 선대로 부터 물려받은 농지가 삼천석이나 되어 인근에서는 제일 큰 부자였으나
세상에 둘도 없는 옹고집 구두쇠였다.
그러나 그집 며느리는 착하고 예뻐서 동네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살았다.
어느날 이 집에 덕이 높은 고승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마음씨 고운 며느리가 쌀 한 됫박을 시주하자 구두쇠 시아버지가 나타나
쌀을 빼앗고 대신에 외양간의 소똥을 담아주고는 스님을 쫓아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며느리는 가슴이 아파 시아버지를 피해 뒷문으로 나가
스님에게 다시 쌀을 시주하니 스님께서 며느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 집에 큰 액운이 깃들어 화를 입을 것이니 당장 이 곳을 피해 나를 따라 오시오.
그리고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이렇게 당부를 하고 얼마를 가던 중 우레와 같은 굉음이 들려오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자 집 부근에 큰 불기둥이 치솟고
으리으리 하던 집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며느리도 그 자리에서 큰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그 후 며느리가 살던 집은 큰 웅덩이가 생겨 장자못이라 부르고
며느리가 변하여 된 바위는 형상이 아기를 업은 모양이라 하여 '아기 업은 바위'
또는 '어금니 바위' 그리고 바위 앞의 문양이 부처를 닮았다 하여 '불암'이라 불려지며
현재의 아산시 지명도 이 바위의 어금니「牙」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좀 진부한 얘기지만 아산시의 유래를 더듬어 보며 인근 산비탈을 파고 든 공장 건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넘어 옛 아산의 군청 소재지였다는 영인으로 향한다.

어금니바위 24
밑에서 본 어금니 바위

아산은 1922년까지 군청이 영인면에 소재했었다고 한다.
이 후 일제가 장항선 철로를 놓으면서 교통의 요충지가 된 온양온천이 번성하자
자연스레 군청이 그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아산시의 역사가 바뀌게 되고
오랜 동안 현감이 다스리던 영인은 중심에서 벗어나 변방 고을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어금니바위 25
영인면 행정복지센타(면사무소)

고을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1911년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모든 건물들이 헐려 나갔고
유일하게 남은 건물은 여민루(慮民樓)로 학교의 정문을 지키며 화려했던 이 고장의 옛 영화를 웅변하고 있다.

어금니바위 26
영인 초등학교와 여민루

역사란 흐르고 변하게 마련이지만 그 흐름과 변천의 과정을 잘 살피고 기록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전설같은 얘기지만 아산의 역사가 사소한 바윗덩어리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면
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발굴하여 우리 후손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소상하게 알 수 있도록 힘써줘야 하는 게 우리들의 도리가 아닐까?


수암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산 52

 

춘당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춘당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