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후반의 학창시절엔 지금처럼 지역마다 공공도서관이 있지 않았다. 대도시라고 해도 산꼭대기에 있는 남산 시립도서관만이 유일했다. 이후에 정독도서관이 생기긴 했으나 집에서 멀어 이용하기에 부담스러웠다. 시험기간이 되면 시내 전체 학생들이 거의 다 몰려오다시피 했다. 자리를 차지하려면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 줄이 한없이 길게 이어졌다. 10원만 내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칸막이가 된 열람실 한 칸을 차지하려면 그만큼 애를 써야 했다. 당시엔 토요일 없이 일주일에 오직 일요일 하루만 휴일이었다. 그 날에 기어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건, 시험공부라는 그럴싸한 명분 아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간식도 먹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여 읍내에 위치한 부여도서관에 들어서니 청소년 시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규모로는 대도시와 비교할 수 없지만 도서관 특유의 정감어린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충남에서는 시, 혹은 군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도서관들은 대부분 충남교육청 소속의 도서관이다. 부여도서관은 그래서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부여도서관이다. 도서관 근처엔 부여여고가 아주 가깝게 있어 학창시절이 재현되는 것 같았다. 푸근했던 날씨도 그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정문 왼쪽에 ‘지식과 행복 충전소 부여도서관’의 글이 그대로 내 지식과 행복을 충전해주리란 믿음에 스르르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학창시절을 지나 직장사회생활을 통과하며 아이들 육아와 여러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도서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중년 이후를 사는 이들에게 도서관은 아마도 ‘정숙’을 강조했던 분위기를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행여 소리 내어 말하기라도 하면 눈총을 맞기도 해서 지금과 달리 그곳은 항상 조용한 공간이어야 했다.
 

 

▲ 도서관에 오는 기쁨,  공부하는 어르신




 
15여년 전, 한때는 지역에서 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교육을 받고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서 우리 동네에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꿨다. 혼자 꾸는 꿈보다 함께 꾸는 꿈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실이 됐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엄마들은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갓난아기에게 수유하는 방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의 작은도서관은 그때의 활동들이 기반이 되었다. 부여도서관에도 유아방이 따로 있다. 
  

▲ 1인당 대출권수가 20권 입니다! 



부여도서관은 1971년에 개관했다. 이후부터는 충남교육지표인 ‘미래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 육성’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지식과 정보, 독서문화진흥, 평생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의 ‘백제자료실’은 다른 도서관에 없는 백제자료 특화서고로 백제인들의 유구한 역사와 지혜가 담겨있는 기록물들이다. 백제자료실은 별관 휴게실 옆에 위치한다. 연관 컨텐츠는 백제언어연구, 백제의 미술, 불교의 나라 백제사비, 백제언어연구, 유적유물로 본 백제 등으로 총 18건이다.
 



▲ 부여여고 건물이 근처 가깝게 있다.








▲ 이제는 평생공부, 평생학습이다.

도서관의 등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아보니 등나무가지들이 우리의 역사처럼, 우리의 일상처럼 서로 얽히고설킨 모양새로 어우러졌다. 근처 여고에서는 해마다 졸업과 입학이 반복되고 등나무는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의 이야기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등나무 아래서 쉼을 얻고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을 것 같다. 계절마다 새순이 나고 꽃을 피우며 지금처럼 모두를 비우고 가지만 남은 도서관의 등나무는 말없이 경청하고 환대한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은 학창시절의 그때처럼 뿌듯하다.  
     
 
충남부여도서관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 259
041)835-2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