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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능산리 고분군은 이제 옛말! '부여왕릉원'으로 찬란한 백제유산의 중심에 다시 서다!

2023.06.26(월) 21:06:35 | 임중빈 (이메일주소:joongbin2@naver.com
               	joongbin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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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충남 부여, 그리고 예전 '능산리 고분군'에서 '부여 왕릉원'이라는 명칭을 다시 부여받은 이곳을 찾았습니다. 인접한 도시인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이 '무령왕릉 및 왕릉원'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 처럼, 부여 왕릉원도 이제는 그 가치와 품격에 맞는 올바른 이름을 얻은 것 같아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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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곳들은 이제 많은 분이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주변국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문화적인 발전이 가히 '절정'에 이르렀을 시기인 백제 후기(475~660)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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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지정되었는데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사비'시대의 백제 왕릉원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사비(지금의 부여군)에서 660년 백제가 멸망함에 따라, 부여 왕릉원은 백제 말기의 왕과 왕족들이 모셔져 있는 왕릉원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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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릉원의 면적은 약 3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답사와 관람을 위해서는 2시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관람속도와 동선에 따라서 조금은 틀릴 수 있는데요. 부여 왕릉원의 관람과 동시에 능산리 사지(능사)와 부여 나성을 같이 관람하는 경우가 있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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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드리는 관람 동선은, 입구로 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현재 원활한 관람이 가능한 '중앙 고분군'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서쪽으로 이동하여 부여왕릉원 아트뮤지엄과 능산리사지, 나성을 순차적으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람을 해야 부여 왕릉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비롯하여 숨겨져 있는 역사이야기를 무난하게 답사하실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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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개되어 있는 중앙 고분군, 총 7개의 봉분들이 현재 부여 왕릉원을 대표하고 있는 발굴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현재 '사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곳들이며 실제로 중앙 고분군을 감싸고 있는 동고분군과 서고분군은 이제 막 발굴이 시작되었거나, 발굴계획에 들어있는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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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분군과 서고분군에도 각각 6기와 4기 정도의 고분군이 분포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각 방향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와 1937년에 발견되어 발굴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그 기록이 명확하지 않고 또 부장품이 별로 없어 큰 성과는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발굴이 진행된 당시에도 '도굴'의 흔적이 많았다는 얘기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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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분군에서 내려다 보이는 왕릉원의 풍경이 꽤 멋있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이렇게 양지 바른 곳에 역대 왕들이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고요. 사비 백제가 존재했던 당시의 시대에 비추어 볼 때에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의 왕릉이 이 곳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이 됩니다. 실제로 백제의 고분군 중에는 공주시에 있는 '무령왕릉'이 그 무덤의 주인공(무령왕과 왕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분군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사비시대에 조성된 부여 왕릉원에 각 고분군의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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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원 내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조선왕릉'이 생각날 정도로 정비가 꽤 잘되어 있습니다. 작은 입장료가 있지만,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장소의 특성 상, 간단한 음료외에는 음식물의 지참이나 취식, 취사가 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조선왕릉을 꽤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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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부여 왕릉원'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맞장구를 칠만한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에 오면 그런 의문점이 말끔히 해소되는데요. 바로 이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된 문화재 중, 우리에게 익숙한 '백제 금동대향로'가 바로 이곳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능산리 사지가 온전히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그 위용은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를 능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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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릉원에서 한 가지 큰 변경점이 있습니다. 보낼 '부여 왕릉원 전시관'으로 쓰였던 곳이, 현재는 '부여 왕릉원 아트 뮤지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여 왕릉원에 유료 입장을 한 관람객들만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라며, 왕릉원을 비롯한 백제 나성의 역사 이야기도 함께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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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미디어아트와 심도 깊은 역사이야기 까지, 그리고 전시관안은 여름철 잠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휴식 공간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인증샷, 포토존 몇개 정도는 있어야 유명세를 타는 요즘 관광지 보다는, 가끔은 가족단위로 우리 삼국시대 백제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적지를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부여 왕릉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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