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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멍 때리자!

내포칼럼 - 서창수 순천향대학교 교수

2023.03.27(월) 20:46:5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멍때리자 1


어느 한가한 산촌에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 모처럼 휴가를 내서 며칠간 휴식 여행을 왔다. 조용한 마을과 들판을 거닐던 도시인이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농부 한 사람을 만나 “왜 이런 대낮에 일하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느냐”고 묻는다. 농부는 “자신은 매일 농사일을 하지 않고 3일에 한 번씩만 들판에 나가고, 나머지 시간은 이렇게 낮잠을 자거나 쉰다”고 답하였다. 도시인은 “그렇게 게으르게 사니 평생 이런 농촌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열심히 일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농부는 “왜 그렇게 당신과 같이 쉬지도 않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고 되묻는다. 도시인은 농부가 한심하다는 듯 길게 설명을 한다. “매일 열심히 농사일을 해야 돈을 더 모을 수 있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농지를 사서 더 많은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그래야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산촌을 떠나 대도시 큰 아파트에서 큰 차를 굴리며 살 수 있다”고 설명을 한다. 그러자 농부는 다시 묻는다. “그렇게 큰 부자가 되고 대도시 큰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 그 다음엔 뭐할 것이냐”고. 그러자 도시인은 “부자가 되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고, 휴양지에 가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낮잠도 실컷 잘 수도 있다”고…. 그러자 농부는 도시인을 한심하다는 듯 “나는 이미 당신이 휴가를 온 농촌 휴양지에서 충분히 쉬고 있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면서 온전히 나를 위해서 잘 살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매일 농사일을 하며 당신이 말하듯 매일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바쁜 것이 일상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바쁘지 않거나 한가하면 이상하게 보거나 스스로 불안해한다. 남들과 같이 정신없이 바쁘고 분주해야만 안심이 되고, 남들과 같이 허겁지겁 다녀야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면서 죽겠다고 하고, 쉬고 싶다고 하며, 휴가 가고 싶다고 한다. 모처럼 어렵게 시간을 내서 잠시 휴가를 가서는 오히려 불안해한다. 왠지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소외된 것 같고, 남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 다시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을 복구해야만 다시 안심이 된다. 현대인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고 모순이며 딜레마이다. 

늘 그렇게 분주하게 뛰어다니다 보니, 제대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짬을 갖지 못하고 세상에 그냥 휩쓸려 산다. 세상의 잣대로, 세상의 유행어에 휩쓸려 그냥 떠내려간다.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은 격이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도 아니다. 그냥 세상이라는 열차가 철로가 깔린 방행대로 가고 있다. 열차를 안타면 그나마 낙오자로 찍히기 때문에, 타기는 탔는데, 타고 보니 이 방향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뛰어내리자니 다칠까 두렵고, 그냥 있자니 점점 더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한다. 초조하게 창밖만 쳐다보며 발을 동동 굴리는 형국이다. 

일단 멈추자, 현재 직장을 그만두라는 극단적 처방이 아니라, 잠시 시간을 내서 며칠이라도 현재 패턴과 속도를 무시해보자. 휴대전화와 SNS를 차단하자. 불안하더라도 잠시 참자. 지금의 허전한, 무방향적, 바쁜 일상을 벗어나는 길은, 세상 속도에 맞추어 같이 뛰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나만의 속도,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세상에 휩쓸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다가, 내 길이 아님을 뒤늦게 알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내 방식과 방향과 속도를 찾아서 달려야 한다. 삶의 후회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좀 쉬자! 그냥 계획 없이 쉬자. 휴식에 지나친 계획을 하면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억지로라도 쉬자. 일하듯 쉬자. 강제로라도 일정을 비우자. 자기만의 방식과 주기로 일정을 비우자. 분주한 것은 성공하는 직장인의 이상적 모습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억지로 뒤쫓아가는 초라한 현대인의 모습일 수 있다. 바쁠수록 시간을 내서 멈추자. 그냥 ‘멍’ 때리자.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기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생각의 주간(Think week)’을 갖고 일주일간 책만 가지고 별장으로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고 유명하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하루에 잠시라도 아무 생각이나 계획 없이 멍 때리자.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멍 때리면서 평소 생각지 못하던 것이 떠오르고 잊고 사는 무엇이 나타난다. 평상에 대한 고마움도 알게 되고 서운함이나 불만에 대한 의미도 되새기게 되고 새로운 행복도 찾게 된다. 작은 쉼이 큰 깨달음을 준다. 느리게 가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시대이다.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보다 얼마나 “나답게”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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