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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피렌체보다 화려하다는 부여, 그 세 번째 이야기

2023.03.01(수) 02:16:16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누가 백제 문화를 ‘검이불루 화이불치’라고 했던가
 
내가 백제를 생각하면 삼국시대 고대국가 중 가장 먼저 멸망의 길을 걸었기 때문일까, 학창 시절 배운 백제 멸망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의자왕의 실정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백제를 쳐들어온 5만의 나당연합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황산벌로 출정하는 계백장군이 나라를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살아서 적의 노비가 됨은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라며 자기 처자 목을 베고 전장에 임하는 비장한 장면과 사비성이 함락되자 3천 궁녀가 낙화암으로 몸을 던져 목숨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라진 백제는 남겨진 기록이 거의 없는 ‘잃어버린 왕국’이라고도 불렸고 흔히 백제의 건축과 공예를 두고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표현하는데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국립부여박물관에 들어선다.

국립부여박물관
▲ 국립부여박물관

박물관 입구, 안내하시는 분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부를 묻자 뜻밖에 “플래시 사용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라는 말에 세계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추세에 맞춰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우리나라 박물관도 수장고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유물처럼 갇혀있는 생각들이 바뀌고 있구나 싶다. 물론 유물을 감상하는 것보다 사진 찍는 것에 더 열중하는 것은 유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는 것은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부여국립박물관은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 유물을 전시한 제1전시실에서부터 기증받은 유물이 전시된 제4전시실까지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래도 제2전시실의 백제금동대향로에 온통 관심이 간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 유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최고의 국보’로 백제 문화가 절정을 이룬 7세기에 왕실의 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된 청동 표면에 금을 도금하여 만들었고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과학적인 설계가 일품이라는 백제금동대향로는 어두운 전시실을 들어서니 좌대 위에 오롯이 올려져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전시 안내판
▲ 백제금동대향로 전시 안내판

백제금동대향로
▲ 백제금동대향로

작은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향로를 본 순간, 가슴 가득 신비로움이 강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듯 용트림하는 용의 형상을 한 향로의 받침과 연꽃이 새겨진 향로의 몸체와 산 모양의 향로 뚜껑 그리고 뚜껑 위의 봉황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작지 않은 높이 62.5cm로 유례가 드문 대작이라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팸플릿에 표시된 QR코드를 찍어 본 영상과 향로를 번갈아 보면서 자세하게 살펴보니 향로의 받침은 용의 뿔과 이빨과 발톱의 형상으로 향로의 다리를 용으로 만든 작품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며, 만물의 탄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연꽃잎은 8개씩 총 3단으로 층을 이룬 몸체는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친다. 산 모양으로 솟아오른 향로의 뚜껑에도 산과 산 사이에 17명의 신선과 42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고 하여 세어보게 되고, 향로 꼭대기에 앉아 있는 봉황은 목에 여의주를 품고 있고 감아 올라간 꼬리는 부드럽다. 봉황 아래에는 완함, 종적, 북, 거문고, 배소를 연주하는 다섯 명의 악사가 새겨져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 백제금동대향로

현대에도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렵다는 1,400여 년 전 만들어진,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여 그 어떤 문화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백제의 걸작품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1993년 이후 더 이상 백제의 문화를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당신의 발밑에 피렌체보다 화려한 부여가 있다」라는 책을 펴낸 홍경수 교수는 백제금동대향로 대표되는 백제의 유물을 두고 “흔히 백제의 건축과 공예를 두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상의 화려함에 가까웠을 것이고 백제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세련되고 앞서가는 건축과 공예 기술을 가진 나라였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나는 이 사람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 겨울의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며 정림사지로 향한다.


따뜻한 눈인사를 보내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에서

절은 산속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내가 이십여 년 전 부여에 와서 읍내 한복판에 절터가 있고 잘생긴 오층석탑이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둘러보았던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1,40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준수한 자태를 뽐내며 절터 한복판에 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세워졌던 사찰로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5만의 나당연합군을 맞아 싸우다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자 당나라 점령군들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힌 부여에 남아 있는 백제 당시의 건축물로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유일하다고 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입구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점점 커 보이는 것은 탑의 외양뿐만 아니라 석탑에 다가갈수록 가슴속에 차오르는 무엇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석탑을 보러 오기 전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 탑을 평가한 글을 보니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용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라고 하니 나에게도 ‘따뜻한 눈인사를 보내올까’라는 기대를 하며 가까이에서 보니 8.33미터 높이에 걸맞게 장중하고 세련되고 부드럽고 우아하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 정림사지 오층석탑

흔히 폐사지 너른 빈터에 서면 전해져 오던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읍내 한복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1,400년의 세월 동안 한 번의 해체 보수 없이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해 왔다는 이 사랑스러운 석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 정림사지 오층석탑

이 석탑의 가치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서산 마애불,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산수문전과 함께 가장 백제적인 유물로 “정림사 오층석탑이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으로 100개의 유물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명작”이라고 했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 백마강을 옆에 두고 있는 부여도 가을이 되면 오전에는 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읍내를 덮을 것 같다. 그런 날이면 옅은 안개가 덮인 폐사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이 오층석탑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고 또 보고 싶어진다.
 
 
국립부여박물관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 041-833-8562
- 상설전시 : 09:00~18:00(공휴일 및 토요일 19: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설날 및 추석
- 관람 시 유의사항 ; 플래시, 삼각대를 이용한 사진촬영, 음식물 반입, 애완동물의 출입금지
 
정림사지 5층 석탑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 ☏ 041-832-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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