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졌던 나이가 25살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나이는 고작 25살에 불과했죠.
결의가 가득 찼던 25살의 청년은 제 한 목숨을 바쳐 폭탄을 던졌고,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켰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결의의 찬 표정을 한 윤봉길 의사였습니다.
"예산에 윤봉길 의사 사적지가 있었어?"
가려던 발길을 돌렸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5년 기념탑을 세웠고, 1968년에는 충의사를 세웠습니다.
그 뒤로 윤의사의 생가와 성장기 등을 복원했고, 유물전시관과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을 세웠죠.
자리해 가볍게 둘러보기 좋은 곳입니다. 이렇게 계절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도 목숨을 바쳐 우리나라를 지키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독립 투쟁 덕분이겠죠?
사실 '윤봉길'의 본명은 윤우의입니다.
봉길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봉길은 스스로 붙인 별명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윤봉길 의사의 증조부인 윤자 때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죠. 4세까지 살던 집이지만,
이후 일제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이곳에서 독립운동의 앞날을 설계하였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지어진 집치고는 너무 말끔하죠?
사실 이 집은 1972년까지 윤의사의 유족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1976년 새로 중수했죠.
독립투사 중 총이나 폭탄 등 무력으로 항일 운동을 벌였던 투사를 의사라고 합니다.
그 폭탄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시락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의사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와 같은 나이였던 25살에도, 그리고 그 나이보다 훨씬 많이 나이를 먹은 후에도
그 마음은 감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커집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와
그의 생가를 걸으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습니다.